고대부터 역병이 돌거나 홍수가 나는 등 재난이 생기면 사람들은 왕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에볼라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과 아프리카 간 비행기 운항을 금지시키고 아프리카에서 에볼라에 감염된 미국인 의료진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도 막아야 한다”며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비난했다. 그랬던 트럼프에게 6년이 흐른 지금 ‘코로나19’ 방역 문제가 재선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전염병이 퍼지면 책임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5년 전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코로나19’의 방역 실패 문제를 놓고 책임 추궁을 당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전파한 중국과의 경제·외교적 관계, 집단감염 사태를 불러온 신천지예수교회 변수 등이 있었다 해도 5000명가량의 확진자가 발생한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염병이 유행할 때 정부 당국의 방역정책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은 언론의 본령이다. 그러나 그 비판의 목적은 전염병으로부터 국민 피해를 줄이고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최소한 전염병이 확산되는 위기 상황, 국가의 가용자원이 총동원된 상황에서 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점이 비판의 우선순위가 돼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방역체계의 문제점이 없도록 조언하고 정치적 책임은 사태가 정리된 후 강력하게 추궁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코로나19 보도는 선을 넘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특히 지난달 19일 신천지신도들의 집단감염으로 환자가 폭증한 이후 이어진 보도는 정략적 보도라는 혐의가 짙다. 조선일보는 일관되게 정부의 초기 중국 봉쇄 실패가 코로나19의 대확산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인 봉쇄를 택하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성사시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총선에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불확실한 추론이거나 논리적 비약이다. 중국인 입국금지론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대한의사협회, 한국역학회, 대한감염학회 같은 전문가단체가 제각각 의견을 냈을 정도로 논쟁적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중국 봉쇄론만이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단정한다. 시 주석의 방한과 정권의 결정을 결부시키는 논리적 고리도 허술하다. 문 대통령이 3년 전 중국을 찾았을 때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연설한 사실 정도를 그 근거로 제시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시진핑의 방한 성사를 위해 국민을 코로나 제물로 바친 문 대통령이야말로 큰 나라에 굽실거리는 것 아닌가”(2월27일 ‘김창균 칼럼’) 이라며 선동에 가까운 주장을 편다. 사설 역시 <中감염원 차단했으면 재앙 없었다, ‘누가 왜 열었나’ 밝히라>(2월24일), <중국은 안 막는 정부 여당이 회의 뒤 ‘대구봉쇄’ 언급>(2월26일) 등 이 문제를 이용해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며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쳤다’는 식으로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부각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더구나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오해받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할 언론이 이처럼 정파성을 드러낸 적이 또 있었던가.
누가 봐도 실무자의 실수인 보도자료의 ‘대구 코로나’를 물고 늘어지거나, 대통령 부부의 영화 ‘기생충’ 스태프 접견을 반복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정부가 할 일은 안 하고 안일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이도록 한다. 조선일보가 바라는 것은 진정 이 정부의 방역실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