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선거를 앞두고

[글로벌 리포트 | 독일]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언론학 박사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이지만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경험하고 있다. 비방이 논의와 합의를 대체하고, 갈등과 혐오, 위협을 강조하여 자극적인 말로 인기를 갈구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 우려스럽다. 극우세력, 우익 포퓰리즘으로 불리는 이런 현상들이 우리나라에서 확산되는 것을 걱정하는 이유는 불과 몇 해 전 독일에서 있었던 유사한 상황을 관찰해봐서다.


2013년 독일에서 우익 포퓰리즘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AfD(독일을 위한 대안)가 바로 그들이다. 베를린에서 창당한 이래 2014년 유럽의회 진출을 시작으로 옛 동독지역인 작센주, 브란덴부르크주, 튀링겐주 등에서 주하원의원을 배출했다. 2017년엔 89개의 의석을 확보하여 연방하원의 원내 제3당이 되었고, 올해 2월 현재 5개 주에서 제2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4.7%의 득표에 그쳐 원내진출이 무산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장이다. 기성 극우정당들이 하지 못했던 극우주의를 우익 포퓰리즘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호소한 것이 효과적이었다. 동시에 AfD가 등장한 시기에 조직된 한 단체의 역할도 주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PEGIDA(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는 ‘정치적 인식과 책임의 증진’이라는 모토 아래 무슬림에 대한 공포,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등을 지지하는 집단이다. 2014년 겨울 작센주 주도(州都)인 드레스덴에서 등장한 이래 한동안 독일의 대표적인 극우단체로서 활동했다. PEGIDA가 조직될 당시 독일은 극우주의를 외치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ISIS로 불리는 이슬람극단주의무장단체가 전 세계적인 위협이 되고 있었고, 독일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발생한 피난민들의 자국 내 임시체류를 허가할지를 두고 찬반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이었다. 독일 내부에선 준비 없이 유입된 무슬림들과 관련하여 갖가지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메르켈 총리에 대한 지지는 낮아지기 시작했고, 적기를 만난 PEGIDA의 극우주의는 순식간에 포퓰리즘의 힘을 얻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된다.


PEGIDA와 AfD의 성장은 동일시기에 나타난 사건이기에 이 둘의 관계가 밀접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공식적으론 그렇지 않았다. AfD가 원내진출에 성공한 이후부터 2018년까지 AfD는 PEGIDA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협력금지대상으로 분류해왔기 때문이다. 이 결정과 관련하여 일부 지역당원과 의원들이 탈당하는 일도 발생했지만, AfD측에선 극우단체로 지정되어 있는 PEGIDA를 자신들의 세력으로 공식화하긴 어려웠기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2018년, AfD가 PEGIDA를 블랙리스트에서 삭제하여 공식적으로 연합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AfD 소속 정치인들이 PEGIDA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강단에 나가 연설까지 했다. 지난달 17일, AfD소속 한 유명 정치인은 PEGIDA의 200번째 집회에 참석하여 ‘PEGIDA가 없었다면 AfD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들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PEGIDA나 AfD가 없는 우리나라지만 현재 상황은 몇 해 전 독일이 경험했던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사회적으로 이름만 다를 뿐 우익 포퓰리즘과 극우주의가 연합하고 있고, 발생할지도 모르는 어떤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이유로 차별과 혐오의 일상화가 강해졌으며, 정치적으론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정당에 갖는 신뢰보다는 세력싸움의 양상이 보인다. 여기에 독일에선 없었던 종교계의 합세가 가져오는 시너지효과는 간과하기 어렵다. 독일에서 극우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확산과정,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영향들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나라 상황을 접할 때마다 여러 생각이 교차되고, 복잡하게 얽힌다.


생각을 잠시 접고 한 달 정도 남은 재외국민 투표 일정을 다시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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