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마스크 대란’의 이유를 되짚어보자. 1월27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일반 시민들이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것은 권장사항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역사회 감염 위험이 있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에 작성된 질본 ‘코로나19 예방행동수칙’에도 일반국민이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권고는 없었다. 질본의 공식 입장은 일반 시민은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만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이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월29일 “KF94, KF99 등급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서서히 마스크 부족 현상이 나타난 지난달 12일엔 KF80을 추가한 뒤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공간에서는 마스크 착용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스크 대란이 벌어진 지난 3일 식약처는 면 마스크와 오염되지 않은 마스크 재사용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날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미국의 CDC, WHO는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을 코로나19 예방 방법으로 권고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왜 정부 부처간 말이 안 맞아 혼선을 빚었을까. 코로나19를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정부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는 상황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경제가 다 죽어간다며 난리였다. 이 사태를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과잉 대응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는 원칙을 무시한 행동이었고, 마스크 수급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판단이었다. 그 부작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마스크와 관련해 각종 음모론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정부가 WHO 기준에 따라 건강한 일반 시민은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면 이런 혼란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조급증은 언론에게도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WHO 가이드라인, 그리고 미국의 CDC 권고안은 진작 나왔지만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한국의 ‘과잉’ 마스크 권고안과 비교해 분석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증폭, 재난 상황에 대한 정치적 이용, 특정 키워드를 이용한 어뷰징 등 기존에 해오던 악습을 반복했다. 이 상황에서 ‘마스크 대란’을 지적한다면 시민들이 언론에 박수를 쳐줄까.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비롯해 수많은 정치인들이 약통을 메고 거리에 소독약을 뿌리고 다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도방위사령부와 협력해 제독차량 12대로 길거리 방역을 했다. 설령 길바닥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길바닥에 키스를 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감염될 리는 만무하다. 길거리 방역이 ‘쓸데없음’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사안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인의 방역 사진을 실은 언론 중에 그 ‘자원낭비’를 지적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한국 언론은 과거 유사한 재난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고 있기는 한 것일까? 정부도 언론도, 조급함을 버리지 않는다면 ‘마스크 대란’같은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최근 새로 배포한 ‘코로나19 보도준칙’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다시 살펴볼 때다. 세계 최하위인 한국 저널리즘의 신뢰도를 ‘빠름’으로 회복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