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넘게 코로나19 사태를 취재하며 보도하고 있다. 매일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을 보며 미지의 영역 최전방에 선 정은경 본부장의 입을 쫓는다. 기자들이 쏟아내는 질문을 꼼꼼히 적어뒀다가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호평을 받은 터다. 국가적·세계적 재난 상황에서 이를 판단하고 분석하며 이끄는 이가 여성인 게 사뭇 새롭게 느껴진다고, 이런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동료기자 몇몇과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취재하면서 여성 전문가를 만날 일은 남성을 만날 기회에 견주면 아직도 매우 적다. 당장 언론에서 여성 전문가의 목소리를 얼마나 마주하는지 떠올려 보라. 그나마 여성 이슈를 포함한 시민사회계나 문화예술 분야를 덜어내면 그 수는 더욱 줄어든다. 정치·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 분석과 전망을 내놓거나 칼럼을 기고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2010년 한국언론학보에 실린 <한국 신문 오피니언 칼럼의 젠더 특성 분석>논문을 보면 이런 불균형이 수치로 드러난다. 오피니언면의 여성 필자 비율은 9.2%(2008년 기준)에 불과했다. 논문은 여성의 목소리가 과소 재현되는 현상 기저엔 “새로운 여성 필자의 발굴을 편집국 내 여성 기자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양상이 있는데다 “‘여성 필자 자신(능력)에 기인하는 문제’란 인식이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분야별 성별 구분도 뚜렷했다. 전·현직 정치인, 관료, 공무원 직업군엔 여성 필자가 한 명도 없었고, 기업인·경제 단체 분야와 의사·법조인 등 전문직 분야엔 단 2명이 존재했다. 반면, 아동·보육·보건·복지 등 ‘보살핌’이 필요한 영역에 여성 필자의 배치가 집중돼있었다.
이런 분석을 ‘10년이나 지난 이야기’라고 마냥 치부하긴 어렵다. 의식하지 않으면 관행은 지속된다. 한겨레신문 역시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돌면서 △정치 △한반도·외교 △노동·복지·교육 △권력기관 개혁 분야별 정책을 톺아보는 관련 기획기사를 보도했는데, 지면을 모두 남성 전문가의 목소리가 채운 것이다. 편집국에선 이런 성별불균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곧바로 제기됐다.
한겨레가 ‘여성전문가DB’를 구축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임지선 젠더데스크의 제안으로 편집국 구성원 각자가 갖고 있는 여성 취재원의 연락처를 모으는 데서 시작했다. △정치·외교 △경제·노동 △법·사회 △여성·인권·환경 △보건·복지·교육 △문화·체육 △디지털·언론 등 분야별로 조언을 해주는 여성 전문가 목록을 모은 뒤 희망하는 구성원과 공유한다. 의식적으로 여성 전문가의 목소리를 담도록 노력하되, 이를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지렛대 역할을 DB가 해주는 셈이다.
“한겨레신문을 펼쳐놓고 그날 기사와 사진에 여성이 몇 명이나 등장하는지 세어 본다”는 따끔한 이야기를 취재원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세상과 독자를 잇는 연결고리가 불균형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도 언론의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단 <한겨레>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언론에서 더 많은 여성 전문가의 목소리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