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자가 중국을 넘어 한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속출하면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전세계 90여개국에서 10만여명의 감염자가 나왔다. 사망자수도 3000명을 넘어섰다. 최근 호주를 비롯, 99개국은 한국발 여행자의 입국을 제한했다. 이탈리아는 감염 경로 차단을 위해 밀라노와 베네치아를 사실상 봉쇄했다. 그야말로 전세계적 위기다.
그런데 미국 텍사스에 사는 필자에게 그동안 코로나19는 외신으로 접하는 먼 나라의 분쟁 소식만큼이나 체감되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친지들 중 다행히 감염자가 없고, 아직 지역 내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며칠 전, 텍사스 지역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SXSW(South by Southwest)가 1주일을 앞두고 돌연 취소된 것이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첫 사건이었다. 그러나 학교·식당·마트가 사람들로 붐비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보기 힘든 걸 보면, 아직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이 일상에까지 침투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루하루 감염의 공포와 일상의 자유를 맞바꾸며 살아가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국인들의 이런 여유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근거없는 낙관론과 코로나 이슈를 프레임해온 방식 때문이다. 지난 1월 첫 감염 소식이 전해진 이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감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거듭 밝혔다.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그는 “코로나19가 별로 치명적이지 않다”거나 “4월쯤이면 기적처럼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식의 근거없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면서, 코로나19의 위험과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지적하는 민주당과 진보 언론에 대해서는 “바이러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무기화한다”며 비난했다. 심지어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뉴욕증시가 폭락했는데도 현실을 인정하는 대신, 민주당과 언론이 불안감을 과도하게 확산한 데 따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대너걸 영 델러웨어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을 축소하면서 그 공포를 내부의 적인 민주당과 언론에 대한 공포로 바꾸는 방식으로 프레임을 구성했다”며 “보수 언론도 공중 보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트럼프의 프레임을 강화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비당파적인) 건강 문제를 진영 문제로 바꿔버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의식해 이처럼 바이러스의 위험을 축소·은폐하는 동안, 미국 시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기회를 잃었다. 허위정보와 음모론, 가짜뉴스가 정보의 공백을 파고 들었고, 그 사이 수백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시애틀을 비롯,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서부를 넘어 바이러스는 이제 수도인 워싱턴까지 침투한 상태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텍사스처럼 감염자가 적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인 것을 보면, 감염자가 더욱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하다.
낙관론과 진영 논리로 바이러스에 대한 전국민적 안전불감증을 확산한 것만큼이나 큰 문제는 코로나 대응을 둘러싸고 정부내 갈등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5일 “정부내 전문가들은 정확하고 일관된 정보를 전달하려 함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낙관론과 허풍, 사이비 과학으로 진실을 흐리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정확한 정보 전달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7일 트럼프 행정부 내 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싼 입장차를 자세히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학적 사실마저 정치화하고, 정부 내 전문가들과의 불필요한 갈등으로 혼선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이른바 ‘샤피게이트’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허리케인의 진로를 놓고 기상청과 논란을 벌여 혼란을 빚은 바 있다. 하지만 세계적 대유행병의 가능성을 가진 바이러스에 대한 정치적·감정적 대응의 결과는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직감’과 ‘아집’이 아닌 정확한 ‘정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