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 두 달 넘게 지난 2월10일에야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적 위기를 맞았는데 최고 지도자가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비판에 못 이겨 나온 시 주석은 “부족한 부분이 수없이 많았다”고 자인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경과한 지난 10일 코로나19 발원지로 꼽히는 후베이성 우한에서 의료진과 만난 시 주석은 형세가 전환됐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 주석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우한을 다녀간 이틀 후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전염병 유행은 절정을 지났다”고 확언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에도 중국 내부적으로는 확실히 안정을 되찾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과 유럽에서 감염자가 폭증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전세가 역전되자 중국 관영 언론들은 신이 났다. 당초 미국이 중국에서 온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자 불안감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는 “미국은 중국과의 항공편 중단 외에 어떤 대비를 했는가”라고 비꼰다. 신화통신은 “어떤 국가는 힘찬 반격에 나서 빼앗긴 땅을 대부분 되찾은 반면 또 다른 국가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다가 자신의 성문에 불이 옮겨 붙자 허둥대고 있다”고 미국 등 서구 사회를 정조준했다.
중국을 무겁게 짓눌렀던 미국과의 경제적 갈등도 일정 기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시작될 2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 구매는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2단계 무역 협상도 교착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이 이 이슈에 집중하기 어려운 탓이다. 중국은 당분간 미국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코로나19 사태로 초토화된 경제와 사회를 복구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시 주석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 등 전염병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각국 정상들에 위로 전문을 보냈다. 전문에는 ‘인류 운명 공동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문 대통령에게는 “세계 각국은 동고동락하는 운명 공동체”라고 강조했고,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에는 “인류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 단결해야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썼다.
인류 운명 공동체는 시 주석이 집권 초부터 외쳐 온 정치적 구호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의 지도자이자 글로벌 리더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특히 트럼트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진 이후 시 주석은 이 구호를 더 자주 언급했다. 중국의 정치·경제·군사적 패권 강화를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이 내부 결속을 위한 프로파간다라면 인류 운명 공동체론은 같은 의미의 대외적 메시지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과의 교류를 축소·단절하는 조치가 잇따르던 2월 초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전격 방중하자 시 주석은 “양국은 운명 공동체”라며 고마움과 함께 그간의 외로움을 전했다. 전염병이 창궐한 국가의 고립된 지도자였던 시 주석은 자국 내 확산세가 잦아들자 코로나19 퇴치에 앞장서는 글로벌 리더로의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된 다양한 차원에서 중국의 태도 변화가 엿보이지만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만큼은 변함 없이 지속지고 있다. 처음에는 비위생적 식문화와 권위주의적 체제 등이 문제를 키웠다는 점을 부정하는 자기 방어 기제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중국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는 자기기만적 행태를 보인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 발원지를 특정할 수 없다는 변명 수준으로 시작해 미군이 중국에 전파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할 정도로 책임 회피의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가 최악의 위기를 맞은 지금 중국이 입버릇처럼 말해 온 책임 있는 대국의 모습을 보이지 못 한다면 인류 운명 공동체도, 중국몽도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