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명이 모여 살던 전북 익산의 한 시골 마을. 여기서 지난 10여년간 30명이 암에 걸렸고 이 가운데 17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에게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걸까.
주민들은 인근 비료 공장을 지목했다. 2001년 마을과 600m가량 떨어진 곳에 공장이 들어선 이후 마을엔 악취가 진동했고 저수지에선 떼로 죽은 물고기가 떠올랐다. 공장이 흘려보낸 오염수가 환경뿐 아니라 주민들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었다. 김진만<왼쪽> 전북일보 기자는 2013년 이 제보를 받아 취재에 나섰다. ‘익산 함라면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사건’의 시작이었다.
김 기자는 이때부터 장점마을 주민들과 연을 이어왔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사화하거나 지자체에 전하고, 지자체 피드백을 또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전문가들과 상의해 대책 방향을 살피곤 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2013년 그의 첫 보도 여파로 이듬해 전북 보건당국이 이 지역과 비료공장을 조사했지만, 오염도가 법정기준치 이하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묻히는 듯 했던 사건은 2016년 또 한 번의 물고기 집단 폐사로 공론화됐다. 시민단체가 제안한 ‘장점마을 민-관-시민단체 공동대책위원회’가 어렵사리 결성된 게 그 무렵이었다. 김 기자도 언론인 몫으로 대책위에 참여했다. 그는 지금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점마을은 아주 조그마한 시골 마을입니다. 익산 시내에서도 정말 멀리 떨어져 있고요. 주민 대부분은 60대 이상 어르신인데, 이분들의 호소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서울은커녕 시내까지도 잘 울리지 않더라고요. 작은 마을 주민들이 외치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지 않아 참 답답했죠.”
김 기자는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문제를 끈질기게 보도해왔다. 이들 목소리에 확성기를 대어준 셈이다. 전북일보도 해당 이슈를 1면 등 주요 지면에 배치하며 기사에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연속보도가 잇따르자 중앙언론들도 뒤늦게 장점마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지자체의 역학조사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정부는 2018년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2년간의 조사 끝에 지난해 11월, 정부는 “비료공장이 퇴비로만 사용해야 할 연초박(담뱃잎 가공 중 발생하는 찌꺼기)을 유기질 비료로 불법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향후 3년간 마을에 206억원을 투입, 12개 주민 지원사업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기자는 그간 잠정마을 암 발병 문제를 보도해온 공을 인정받아 이달 한국신문협회가 선정한 ‘2020년 한국신문상’ 뉴스취재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전북일보 기자의 한국신문상 수상은 1966년 1회 이후 처음이다.
김 기자는 자신의 수상 소식에 마냥 기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 투병 중인 분들이 눈에 밟혀서다. 비료공장은 이미 2017년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주민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또 비료공장이 불법으로 유기질 비료(가공)를 생산하도록 담뱃잎을 제공한 KT&G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수상의 기쁨보다는, 이 문제가 지역 내 메아리로만 그치지 않도록 함께 보도해준 동료 기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주민들이 주장해온 비료공장과의 연관성이 정부 조사에서 사실로 드러났어요. 다만 완전히 마무리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아직도 고통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끝날 때까지 보도해야죠.”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