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등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 영상을 찍게 하고 유통시킨 ‘텔레그램 n번방’ 핵심인 ‘박사방’을 운영한 20대 남성이 체포, 구속됐다. 한겨레가 지난해 11월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탐사 보도를 한 지 4개월만이다. 국민일보가 ‘n번방 추적기’를 통해 사안의 심각성을 다시 환기한 지 채 10일이 되지 않아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시민들의 분노로 들끓고 있다. ‘n번방’ 운영자와 26만여명으로 추정되는 가입자 신원을 공개하라는 두 청원에 400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신원을 낱낱이 밝혀 악의 고리를 끊자는 성난 여론이다. 문 대통령도 특별메시지를 통해 “국민의 정당한 분노에 공감한다.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특별조사팀 구성을 지시했다.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 신원 공개로 응답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차단하기 위한 입법 움직임도 활발하다.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해결 청원’이 지난 2월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에 전달했지만, 의원들의 낮은 성 인식으로 입법이 무산된 때에 비하면 확 달라진 변화다. 당시 핵심 요구사항은 세 가지였다. 국제공조수사 강화, 디지털성범죄전담부서 신설, 양형기준 강화다. 다가오는 21대 국회 1호 법안이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을 특별법이기를 바란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성착취는 바이러스를 닮았다. 숙주 없이 자가 증식할 수 없고, ‘변이’가 되면 매우 위협적이다. ‘n번방’에 대한 극약 처방이 필요한 이유다. ‘n번방’이 활개치기 전에는 소라넷과 웹하드, 다크웹이 성착취물 소비의 온상이었다. 웹하드를 단속하자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며 증식해왔다. ‘n번방’도 단속을 피해 수시로 방을 만들고 폭파하기를 반복하며 생존해왔다. 몇 만, 몇 십 만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숙주 노릇을 해왔다. 은밀한 비밀방에서 10대 소녀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반인권적 행위를 사주해왔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참담한 현실 앞에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먼저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운 선정적 보도를 경계해야 한다. 이미 일부 언론에서 벌써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씨에 대한 자극적 보도가 나오고 있다. 성범죄의 구조적 문제보다 괴물이 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 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만든 ‘성폭력 사건 보도수첩’을 가이드라인 삼아 보도하길 바란다.
둘째, 갈수록 지능화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을 강화할 국회 입법에 힘을 실어야 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의 미온적 처벌이 성착취물 시장을 키워온 것이 현실이다. 처벌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엔 무거운 양형 기준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은 미성년자 불법 영상물을 엄벌에 처한다. 셋째, 피해자가 고소하고 가해자가 특정돼야 수사를 시작하는 관행을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한다. ‘텔레그램 n번방’처럼 갈수록 악랄해지는 범죄에 대응하려면 지금의 수사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 경찰이나 검찰에 전담부서를 두고 선제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아무리 싹을 잘라도 독버섯처럼 자라는 게 성착취 불법 영상물이다. 개인정보가 공개된 피해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생존권이 위협받는다. 언론은 디지털 성범죄를 일회성 뉴스가 아니라, 반드시 퇴치해야 할 바이러스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야만적 사회를 물려줄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