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공개 또는 피의사실공표의 이중 기준

[이슈 인사이드 | 법조]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2월) 4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의 송(철호) 시장 등 13명에 대한 공소장에는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황(운하) 전 청장의 만남 제의에 송 시장이 핵심 측근에게 ‘만나볼까’라고 묻자 이 측근은 ‘송병기 전 부시장이 모아 놓은 김 전 시장 비위 자료를 (황 전 청장에게) 줘보이소”라고 답변했다.“ -2020년 2월5일 동아일보

“지난주 (검찰의)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간부들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공소장을 입수해서 봤더니 해경 상황실은 123정과 헬기에 설치도 안 된 시스템으로 지휘를 내려서 혼선만 일으켰습니다. 또 목포해양경찰서는 당시 세월호와 교신 시도조차 안 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2020년 2월27일 JTBC

2020년 2월에 보도된 기사 두 건이다. 앞엣것은 동아일보 법조팀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공소장을 입수해 작성한 기사다. 뒤엣것은 JTBC 법조팀이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 의혹에 대한 공소장을 입수해 보도한 기사다. 두 기사 모두 법무부가 공개를 금지한 공소장을 입수해 보도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두 기사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추미애 장관은 동아일보 보도가 나오자마자 기자들에게 “(공소장이) 어떻게 해서 유출이 됐는지 앞으로 확인을 해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JTBC 보도가 나온 이후 추 장관이 경위 파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동일한 ‘공소장 보도’인데 반응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이상한 일은 또 있다.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질 당시, 수사 상황에 대한 보도는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기소 이전에 수사 관련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되며 언론 역시 공범이라는 주장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김경수 도지사 같은 공적 인물이 조국 전 장관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단 사실을 며칠 뒤 뒤늦게 확인해 보도한 기사에 대해서조차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는 기소 이전에 구속영장 청구서의 상세한 내용이 보도됐음에도 비난은 없었다.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해 검찰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법무부 장관의 지적도 없었다. 최근에는 n번방 사건과 관련해서 아직 기소되지 않은 피의자들의 혐의 사실에 대한 보도가 매일 쏟아지고 있지만, 누구도 언론을 비난하지 않는다. 형사사건의 공개 방식의 적절성 또는 피의사실공표의 정당성에 대해 명백히 이중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중기준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법무부가 ‘형사사건공개금지 규정’을 만들 때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기소 이전에는 극도로 제한된 정보만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위반 시 감찰과 징계를 예고하고 있는 이 규정을 특정 사건에 적용할지 말지 판단하는 주체는 법무부다. 따라서 정부가 알리고 싶어 하는 사건들, 예컨대 지난 정권이나 야당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고, 반면 정부가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건, 예를 들어 여당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규정이 엄격히 적용될 것이란 우려가 애초부터 제기됐다. 예상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형사사건공개금지 규정을 만들 때 법무부는 피의자의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보편적 인권은 조국이나 송철호뿐 아니라 정부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우산 노릇을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규정이라면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이중기준이 적용되는 강제 규정은 권력자를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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