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보다 더한 '대통령 스트레스'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전 세계를 휩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남미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도 덮치고 있다. 지난 2월 말에 첫 확진자가 보고된 이후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면서 3월 들어서는 2~3일마다 확진자 수가 배 이상 규모로 늘고 있다. 철저한 방역과 주민 이동 제한, 대규모 격리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4월 초순에 확진자가 20만여명, 사망자는 5천여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결국 브라질 정부는 하늘과 바다, 육로를 통한 외국인 입국을 막았고,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상가의 영업 활동과 학교 수업을 금지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방역에 대해 느슨한 태도를 보이는 사회 분위기 속에 전국의 빈민가 주민이 1000만명으로 추산되고 상파울루시에만 노숙자가 2만4000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아찔하다. 한마디로 방역 취약 지점이 너무 많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보다 최근에는 ‘대통령 스트레스’가 국민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대규모 격리와 이동 제한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브라질은 멈출 수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모든 국민이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 일상을 되찾고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방역’을 내세우는 그의 발언에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 주요 언론은 경악했다. WHO 사무총장은 “많은 나라의 중환자실이 환자로 가득 차는 것을 보라”며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질타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격리와 이동 제한을 풀면 곧바로 재앙”이라며 섣부른 행동을 경계했고, 브라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언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독일 슈피겔은 그를 ‘부정주의자’(negationist)로 불렀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보우소나루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을 ‘언론이 만든 판타지’ ‘언론 히스테리’로 부르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데도 이를 두고 ‘가벼운 감기’쯤으로 간주하는 그를 두고 ‘보우소네로’(BolsoNero)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로마제국 네로 황제의 독단적 행태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시민사회의 비판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보건을 상품 취급하는 대통령의 저급한 인식에 강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전국의 대도시에서는 지난달 17일부터 보우소나루 퇴진과 공공보건 시스템 강화를 촉구하는 ‘냄비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냄비 시위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연대를 강화하면서 참여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냄비 시위는 중남미 지역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위 형태다. 냄비나 프라이팬, 주전자 등을 두드리며 생활고를 호소하거나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정치적 행위다. 냄비 시위의 중간 어느 날에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일제히 박수를 치며 고마움을 전하는 감동도 연출했다.


‘대통령 스트레스’는 정치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 정치 컨설팅 회사 아틀라스 폴리치쿠의 조사에서 보우소나루 탄핵에 대한 의견은 찬성 47.7%, 반대 45%로 나왔다. 국정이 안정을 찾지 못하던 지난해 5월 조사의 찬성 38%, 반대 49.4%와 비교된다. 정치권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2018년 대선에서 열렬한 보우소나루 지지자였던 한 여성 정치인은 보우소나루를 지지한 것을 후회한다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보우소나루가 권위주의적이고 독단적인 행태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도 지지를 잃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잇따른다. 이에 맞춰 중도좌파 정당 하원의원은 대통령 책무를 저버렸다며 탄핵을 발의했다. 보우소나루 집권 이래 탄핵안이 발의된 것은 11번째다. 브라질에서는 2016년 좌파 노동자당(PT)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다. 그로부터 4년 만에 이번엔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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