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의 한 논설위원이 타 언론사 기자의 칼럼을 베꼈다는 논란 속에 지난 9일 사표를 냈다. 해당 위원의 바이라인을 달고 나간 기사는 한 달 앞서 출고된 아시아투데이 소속 하노이 특파원의 기자칼럼과 매우 유사했다. 아시아투데이 기자칼럼을 구성한 13개 문장 중 무려 8개 문장이 한국경제 기사에도 고스란히 담겼던 것이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9년 4월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이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베껴 썼다는 비판 속에 직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오랜 기간 언론계에 몸담으며 실력을 인정받아 각각 논설위원과 특파원 자리에까지 올라간 언론인이 타인의 글을 베꼈다는 불명예 속에서 무너진 것이다. 이쯤 되면 베끼기, 즉 뉴스 표절 문제는 언론인 한두 명의 일탈로 볼 수 없다. 한국 언론계 전반에서 이어져 온 ‘질 나쁜 관행’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언론계에 이 같은 뉴스 표절 행위가 만연했다는 비판은 사실 예전부터 줄곧 나왔다. 실질적인 문제 제기도 많았다. 일간지·방송사 등이 보도를 표절·도용해 신문윤리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건수는 2017년 175건에 이른다. 인터넷 뉴스를 포함하면 ‘훔친 기사’ 수는 훨씬 많아진다. 2017년 인터넷신문위원회에 표절 금지 위반으로 지적된 사례는 무려 1480건이었다. 표절과 다를 바 없는 출처표시 위반(450건)까지 포함해보면 숫자는 더 커진다.
그럼에도 이 같은 뉴스 표절 행위는 계속 묵인돼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로 표절에 너그러운 언론계 문화가 지적된다. ‘우라까이’에 익숙한 기자들이 표절에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우라까이란 ‘뒤집다’는 뜻의 일본어 ‘우라가에시(裏返し)’에서 비롯된 기자들의 은어인데, 남이 쓴 기사를 슬쩍 비틀거나 교묘히 재구성해 자기 걸로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그냥 ‘베끼기’라고 부르면 될 걸 굳이 새로 이름을 붙여준 것은 아마도 이 행위가 ‘문제적’이라는 사실을 기자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꺼림칙했던 행동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버릇이 됐고 관행이 됐다. 너도 나도 베끼는 가운데 누구 한 명 특정해 공격하기도 불편한 문화가 기자들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베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언론계의 문제는 표절 논란이 번진 후의 대처를 봐도 잘 드러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03년 기사를 조작하고 남의 기사를 베낀 기자를 파면 처분하며 당시 지면 발행에 책임이 있는 편집국장과 편집인도 옷을 벗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한 뉴스통신사 기자가 다른 기사를 베껴 회원사에 서비스했다가 사장이 책임을 지고 퇴사했다. 국내 언론은 표절 사실이 드러나도 기사 삭제 등의 조치만 취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때때로 기자 개인에 엄벌을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편집국장이나 발행인 선에서 책임지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물론 아직도 국내 언론계에는 표절하지 않는 기자, 열심히 하는 기자가 더 많다. 기사 한 줄 제대로 쓰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기자들 덕분에 ‘특종’이 터지고 ‘단독’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공들여 쓴 ‘특종’과 ‘단독’이 쏟아지는 ‘도둑 기사’들 탓에 금세 빛 바래는 경우가 요즘 비일비재하다. 잘 베껴 쓴 기사가 포털 등 유통 환경 속에서 더 주목받기도 한다. 애써 발굴한 뉴스를 도둑맞는 일이 계속된다면 좋은 뉴스를 생산하고자 하는 기자들의 의지도 꺾일 수밖에 없다. 좋은 기사를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기자들을 위해서라도 뉴스 표절에 관대한 언론계 문화는 하루빨리 깨뜨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