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지금도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있는 거대한 비극이지만 언론에는 일종의 기회로 여겨지기도 했다.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 대재난 속에서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넘쳐 났던 것이다. 사람들은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길 기대하며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간밤의 소식이 궁금해 신문을 펼쳐 드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이번 기회에 언론의 순기능을 한껏 발휘하고 무너졌던 신뢰를 회복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좋은 보도도 있었지만 대다수 뉴스는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자극적인 소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부터 지금까지 보도된 코로나19 관련 뉴스들은 국내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죄다 모은 집합체처럼 보인다. 감염병 뉴스는 국민 생명·건강과 직결되기에 속보성보다는 정확성이 중요시되지만 많은 언론들이 질보다 양을 택했다. 기자협회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20일부터 10주간 국내 18개 신문사가 쏟아낸 기사만 해도 6만 여건에 이른다. 방송사와 지역 뉴스 등의 주요 매체를 제외해도 하루 평균 48개 꼴인 셈이다. 여기다 비슷한 기사를 반복 전송해 클릭 수를 올리는 인터넷 매체의 뉴스를 더한다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뉴스에 시달렸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게다가 생산된 뉴스 상당수는 의미 있는 정보가 되지 못한 채 불안과 편견, 갈등만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진실인 양 보도하는 허위·과장보도가 이어지며 ‘인포데믹(infodemic·거짓정보 유행병)’이 문제가 됐을 정도다. 사생활 침해에 가까운 신상털기식 보도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감염 사실을 모르고 일상을 살았던 평범한 감염자들마저 악당이 됐고 조롱을 받았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정부 대처에 대해 ‘무능한 정부’ 혹은 ‘뛰어난 정부’로 제각각 해석하는 뉴스가 난무해 국민들의 입맛을 쓰게 했다. 감염병 보도조차 정파적으로 해석하는 언론의 모습은 실망감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28일 감염병 보도 준칙이 나온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감염병 보도 준칙은 감염병 보도가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무엇보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는 점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기사 작성 시 반드시 전문가의 자문을 구할 것과 피해자들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등 언론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명기했다. 기자들의 불필요한 취재 경쟁을 막고 기자들이 감염 매개가 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직접 대면 원칙을 고수하기보다 공동취재단 구성 등을 제안한 것 또한 의미 있는 한걸음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스스로가 내건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일이다. 실천 없이 준칙만 남발하는 집단이 돼서야 그나마 남은 신뢰마저 깎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개별 기자뿐 아니라 언론사 등 조직의 변화도 요구된다. 언론 내부적으로 보도 준칙을 엄밀히 지키고 기자들에게도 언론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식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실 감염병 보도와 관련된 준칙은 이미 2012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이 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와 협의해 감염병의 규모·증상에 대한 과장된 표현 자제하기 등의 내용을 담아 제정된 바 있지만 이런 준칙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기자들이 많았다. 언론 신뢰를 훼손하는 보도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보도 준칙이 언론 전체에 스며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