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관련 보도가 세상을 뒤흔든 한 주였다. 보도를 모아놓고 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잘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상 이미 생을 마감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자세한 정황을 전한 것은 일본의 ‘슈칸겐다이(週刊現代)’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의사의 심리적 부담감과 중국에서 오랜 기간 연수를 받았음에도 거구를 다뤄본 일이 없는 경험 부족 때문에 스텐트 시술을 받다 식물인간이 됐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자세한 얘기는 오히려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 기사 본문에도 “당장은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이란 단서가 달려있다.
‘당장은 믿기 어려운 얘기’를 굳이 기사로 쓴 이유는 뭘까? 슈칸겐다이는 주간지 시장에서 슈칸분슌(週刊文春), 슈칸신쵸(週刊新潮), 슈칸포스트(週刊ポスト) 등과 4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황색언론이 다 그렇듯, 이들 모두 가십에 치우친 자극적인 기사로 악명이 높다. 이들이 그래도 매체로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흥미 위주의 보도 경쟁 와중에 가끔 정치적 의미가 있는 특종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주간지의 뇌물 수수 보도로 낙마하는 정치인의 사례가 종종 나온다. 1974년에는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록히드 사건 보도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물러난 일도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출판 시장이 축소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이들이 선택한 길은 앞서의 가십성 보도 강화와 이념적 극우화다. 노골적 혐한 논리에 기초한 날조가 횡행한다. 사실 확인이 근본적으로 어렵고 보도의 책임을 질 필요도 없는 북한을 소재로 한 소설 같은 기사가 종종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세계적 관심사로 만든 CNN이 과감한(?) 보도를 감행한 배경도 넓게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CNN은 보도 전문 채널로 보면 개척자의 입장이지만 1980년 창립 당시 전체 방송사의 상황으로 보면 후발주자의 위치였다. 24시간 뉴스만 방송하는 보도 전문 채널의 존재는 당시만 해도 생소했다.
CNN이 오늘날과 같은 영향력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1년의 걸프전이다. CNN은 기자를 전장과 가까운 위험지대까지 들여보내 미군 전폭기의 바그다드 폭격을 거의 생중계하다시피 보도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스펙타클이 전쟁의 본질을 대체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을 증명하듯 CNN은 2013년 북한이 정전협정을 백지화했을 당시 서울 지하철 역에 상시 비치된 방독면 등을 비추며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CNN의 행태는 친민주당 성향이라는 정파성의 반영인 것 같기도 하다. CNN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클린턴 뉴스 네트워크”라고 불리고 있다. 친공화당 성향의 폭스뉴스와는 전통적인 대립관계이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개인적 관계’ 구축을 외교 성과의 하나로 과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CNN의 보도는 타격이다. 자극적인 걸로는 지지 않는 폭스뉴스가 김정은 위원장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문정인 특보의 “그는 건강하고 살아있다”는 발언 등을 보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언론이 시청률이나 판매부수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성을 시사한다. 공영방송은 그 유력한 수단 중 하나지만 우리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난을 당하며 중립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서 주로 동원되는 근거가 시청률이나 광고매출이라는 점은 유감이다. 남의 나라 언론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의 갈 길을 고민해보는 일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