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침류와 오월동주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중국 진(晉)나라 때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당시 유행하던 청담사상(淸談思想·염세적 세계관)에 심취해 속세를 등지고 은거하려 했다. 이 같은 결심을 친구에게 전하며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을 하겠다(漱石枕流·수석침류)”고 말했는데, 사실은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하겠다(枕石漱流·침석수류)는 걸 잘못 말한 것이다. 친구가 핀잔을 주자 손초는 “돌로 양치질하겠다는 건 모래로 이를 단단하게 한다는 뜻이고 물을 베개 삼겠다는 건 되지 않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귀를 씻겠다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잘못된 논리나 실수를 인정하고 않고 억지를 부리는 꼴을 의미하는 ‘수석침류’ 고사의 유래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미·중 간 책임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양국이 어깃장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손초의 실언과 변명 정도는 애교로 느껴질 정도다. 중국의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처음 보고됐지만 발원지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주장은 코로나19 사태라는 미증유의 재난과 맞닥뜨린 전 세계인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방사형으로 퍼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이어진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가 코로나19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퍼뜨렸다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바이러스가 우한의 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데 회의적이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도 “바이러스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양국이 각각 책임론을 제기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국내적 요인이다. 중국은 214개국에 걸쳐 확진자가 390만명을 넘고 사망자도 28만명에 육박하는 세기적 재앙을 초래한 책임을 오롯이 감당하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경제가 역성장하고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까지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경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의 집권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28만명의 확진자와 7만7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는 11월 재선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민적 분노를 떠넘길 대상이 필요하다.


국제 사회 내 입지 경쟁도 치열하다. 중국은 코로나19 발원지라는 오명을 씻고 위기 극복의 공헌자라는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해 유럽 등 각국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중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글로벌 리더십이 추락한 상태다. 중국이 G2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 연일 중국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이유다.


문제는 양국의 신경전이 미·중 무역 분쟁 재개와 남중국해 및 대만 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 등 더 거친 다툼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서방 5개국의 정보 당국이 중국의 코로나19 증거 은폐·파괴 의혹을 제기한 데 반해 러시아는 “전염병을 핑계로 중국을 비판하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진영을 갈라 싸우는 신냉전 조짐까지 엿보인다. 미·중 간 고래 싸움에 끼인 한국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세계 경제 규모가 3% 이상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 한국 입장에서 미·중 갈등 악화로 글로벌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지금은 오월동주(吳越同舟) 고사처럼 강의 한복판에서 폭풍우를 만난 배 위에 미국과 중국이 함께 타고 있는 형국이다. 손자(孫子)는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은 서로 싫어하지만 한배에 타서 강을 건너는데 풍우를 만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돕게 된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건 현 시점에서 미·중 양국이 한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당년의 손초처럼 현실에서 도피할 방도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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