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 당선 무효 소송이 7건이나 제기됐다. 이중 ‘18대 대선 선거무효소송인단’은 법적 근거 없이 전자개표기(투표지분류기)를 도입해 선거결과 조작 가능성이 있다며 2012년뿐 아니라 2017년 대선도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물론 대법원은 이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며 2017년 8월에 기각했다.
2020년 일부 유튜버와 정치권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또 제기했다. 올해 총선이 “빼박 조작선거”라고 주장하는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세상 뒤집어질 증거’라고 제시한 것은 “서초을 사전투표지와 분당갑 투표지가 분당을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사진이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재검표 수개표 공탁금에 수십억원이 필요하다며 모금운동에 나섰다. 많은 언론이 팩트체크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부정선거 음모론은 2012년 대선 이후 진보진영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주장에 대해 지상파 방송과 (진보) 언론은 침묵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일부 언론은 오히려 ‘합리적 의혹제기’라며 힘을 실어주기까지 했다. 당시 의혹제기 당사자였던 김어준 뉴스공장 진행자는 방송에서 “나는 투표지분류기를 사서 분해까지 해봤다”며 음모론에 대한 전문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고 장자연씨 지인 윤지오씨는 세칭 ‘장자연 사건’의 핵심 증인을 자처하며 주요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하지만 증언 내용 대부분은 허위로 밝혀졌으며 윤지오가 봤다는 소위 ‘장자연 리스트’는 과장됐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에게는 명예훼손과 후원금 사기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며 인터폴의 적색 경보가 내려졌다.
경위가 어찌됐든 윤지오씨의 과장 혹은 거짓 주장을 한국 언론이 결과적으로 홍보를 해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언론도 이를 제대로 반성하거나 해명하지 않았다. 남 얘기하듯 ‘유체이탈 화법’으로 윤지오 논란을 다룬 언론이 있을 뿐이다. <윤지오 사기극과 그 공범들>이란 책을 낸 서민 단국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기대해 주세요. 당신들이 있는 한 제2, 제3의 윤지오가 또 나올 거에요”라고 적었다. 윤씨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지만, 한국 언론에 한 말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어느 사회에나 음모론은 있고 이를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론의 도움 없이 절대 주목받지 못한다.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언론의 정파성’이다. ‘우리 진영’에 도움되는 주장이라면 음모론이라 할지라도 대대적으로 홍보해주고 검증을 게을리하는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팩트체크를 해도 안 믿는 (척 하는) 이유는 ‘저쪽’도 이걸로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파적 보도, 그리고 반성없는 저널리즘은 한국언론 신뢰 하락의 주 원인이다.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언론인의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소비자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성찰하는 언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검증에 소홀하게 될 수밖에 없고 음모론과 사기행각은 계속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