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보도, 바꿔보자"… 이번엔 기대해봐도 될까요

KBS '법원의 시간', 서울 '대법원장…', 한겨레 '조국 재판 정주행' 등
'한쪽 입장 부각' 아닌 충실한 전달… 검찰서 법원으로 무게중심 이동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재판이 지난 8일 시작됐다.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은 지난 1월 시작해 13차 공판까지 진행됐다.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이 말한 대로 ‘검찰의 시간’이 끝나고 이젠 ‘법원의 시간’이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검찰이 공소장에 밝힌 내용이 다시금 확인되기도 하고, 수사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사실들이 밝혀지기도 했다. ‘검찰 주장만 받아쓴다’는 비판을 받던 언론은 이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치열한 법정 공방 중 한쪽 주장만을 부각해 보도하는 기사도 물론 있고, 이를 비판하는 반대 진영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재판 내용과 쟁점을 충실히 전달하는 보도 등 이전과는 달라진 변화들도 눈에 띈다.


한겨레는 지난 10일 <조국 재판 정주행> 시리즈를 시작했다. 기사 발문에서 한겨레는 ‘조국 아웃’과 ‘조국 수호’ 주장이 충돌하던 지난해 가을 광장을 언급하며 “조국 사건의 실체적 진실 파악을 위해 사건의 맥락을 짚으며 재판 상황을 정확하게 보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조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관련한 첫 심리를 다룬 기사에선 4시간 동안 진행된 검찰과 변호인의 증인 신문 내용을 핵심 요지와 문답 형태로 정리했는데, 공백을 제외한 글자 수가 8400자가 넘을 정도로 상당한 분량이었다.



앞서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지난 5일 ‘말 거는 한겨레’ 칼럼에서 “재판 보도 바꿔보자”고 제안하며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부족한 취재인력을 온종일 법정에 투입해야 한다. 지루하기까지 한 공방을 독자가 즐겨 읽는다는 보장도 없다”면서 “그래도 시도해야 달라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조국 재판 정주행’ 기사는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며, 지난 14일 개정 공표된 한겨레의 ‘범죄 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세칙’을 반영한 결과다. 세칙은 ‘재판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사 때보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전모가 규명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재판 과정과 결과를 적극적으로 취재보도한다”고 명시했다. 이춘재 한겨레 사회부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나온 내용과 재판 결과가 크게 다르거나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며 “재판 단계가 더 정확한 만큼 앞으로는 거의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성범죄 사건을 제외하면 공개 재판이 원칙이고, 주요 재판은 풀(pool) 기자가 돌아가며 전체 공판 내용을 공유하기 때문에 재판 과정을 보도하는 것이 예전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법조 기자들 사이에서도 검찰 쪽에 치우친 무게중심을 법원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해 사법 농단 재판을 집중적으로 취재한 보도들이 쏟아졌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을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란 제목으로 온라인 지상 중계하고 있는데, 67차 공판을 다룬 지난 14일자 기사는 68회차를 기록했다. 경향신문도 지난해 3월부터 1년 넘게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을 연재 중이며 지난해 4월 시작된 KBS의 <판사와 두 개의 양심> 시리즈는 24회차까지 이어졌다. 단순히 법정 공방을 전달하거나 죄의 성립 여부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 쟁점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사들이다.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은 조 전 장관 일가 재판을 다룬 ‘법원의 시간’ 시리즈로 이어졌다. KBS는 정경심 교수의 첫 공판이 열린 다음 날인 1월23일부터 <법원의 시간>이란 제목의 디지털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지난 18일까지 19편의 기사가 나왔고, 지난 3월부터는 법조팀장과 담당 기자가 출연하는 동명의 유튜브 영상 콘텐츠도 제작해 선보이고 있다. 방송뉴스 리포트에선 시간 한계상 재판의 주요 내용만 다뤘다면, 디지털 기사에선 공판에서 쟁점이 된 내용을 정리하고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던 내용을 보도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시리즈의 주 작성자였던 기자가 18일 법조팀을 떠났지만, 보도의 연속성을 위해 다른 기자가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이다. KBS 관계자는 “‘판사와 두 개의 양심’, ‘법원의 시간’ 등에서 보듯이 KBS 법조 기사가 공판 중심으로 바뀌는 등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 “내부 지침 개정 등 부문별 기사 작성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범죄의 보도’ 관련 방송제작 실무지침을 포함한 방송제작가이드라인도 4년 만에 개정 작업이 한창이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늦어졌지만, 공영미디어연구소에서 방송제작가이드라인 등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며 “오는 9월 방송의 날에 맞춰서 개정판을 선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