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법조 기사’의 꽃은 검찰이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법원에서 법적 공방을 통해 밝혀지고, 1심에 이어 2·3심을 거쳐 판결이 확정되지만, 언론의 관심과 보도 비중은 역순이었다. 압수수색·소환·구속영장 청구 등 외부적으로 보이는 검찰의 수사 행위뿐 아니라 ‘검찰 내 소식통’을 인용해 내사 중인 사건까지 ‘특종’이란 이름을 달고 보도됐다.
크게 검찰과 법원으로 나눠지는 언론사 법조팀의 중심 또한 검찰 출입 기자였으며, 그중에서도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중심으로 각종 ‘특종’이 터져나왔다. 정권 말이나 초가 되면 검찰은 준비나 한 듯 큰 사건을 터뜨렸으며 이름난 재벌 총수, 전 정권의 실세들이 ‘피의자’가 되어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검찰청 문턱을 드나들었다.
이런 보도 관행은 검찰과 언론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언론에 주요 수사 상황을 흘려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려 했으며, 언론 역시 검찰이 제공하는 ‘특종’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매체의 존재감을 높였다. 외국에서는 한국처럼 수사 상황을 받아쓰는 언론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언론은 경쟁적인 수사 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검찰 수사 보도 관행에 결정적 변화와 성찰을 불러온 것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검찰의 피의사실 유출과 언론의 ‘받아쓰기’, 여론 재판에 대한 비판이 대대적으로 제기됐다.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검찰 개혁과 검찰의 권력 견제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숱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수사 보도는 계속됐다. 속보성·화제성 면에서 검찰 수사는 매력적이었으며, 재판 과정에서 이뤄지는 사실관계나 법리적 공방은 복잡하고 지루했다. 헌법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하는 ‘무죄 추정 원칙’을 천명하고 있지만, 언론의 보도는 검찰 기소단계까지 힘껏 내달리다, 정작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공방이 시작되는 법정에선 사그라들었다.
“이제 검찰의 시간이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변호인 말이다. 조 전 장관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진보·보수의 극심한 갈등, 수사 단계에서 벌어진 피의사실 공표와 과열된 보도 경쟁은 한국 언론에게 ‘법원의 시간’을 생각할 계기를 제공했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만들어지는 등 ‘검찰 개혁’이 이뤄지고 있다면, 언론 역시 수사 보도 관행에 대한 반성과 개선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이뤄지는 시도는 고무적이다. KBS는 ‘법원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조 전 장관 재판을 연속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은 ‘조국 재판 정주행’ 연재를 시작했다. 이들은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재판 과정을 정확히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새로운 취재보도 준칙을 만들며 ‘재판 보도의 중요성’ 항목을 마련,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전모가 규명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재판 과정과 결과를 적극적으로 취재 보도한다”고 적시했다.
장시간 이뤄지는 재판 속에서 오가는 복잡한 공방을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정리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는 새로운 숙제다. 공정한 보도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언론의 책무라면, 언론은 이제라도 방기해 온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재판 중심 보도가 ‘조국 사태’라는 커다란 사건뿐 아니라 일반적인 형사사건 보도의 새로운 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