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자가 가진 '제너럴리스트' 능력을 필요로 해요"

[기자 그 후] (21) 김수진 ㈜머스트게임즈 데이터분석실장 (전 YTN 기자)

모바일 게임 스타트업 (주)머스트게임즈(MUSTGAMES)의 김수진 데이터분석·사업실장은 요즘 걱정이 많다. 얼마 전 글로벌 140개국에 출시한 게임 ‘로그 유니버스’의 실적이 마음같지 않아서다. 영락없는 게임산업 종사자는 ‘한국서 SF는 여전히 생소한 걸까’ ‘MMORPG 장르가 아닌 전략게임은 너무 이질적이었을까’ ‘처음부터 서양권 게이머를 타깃팅 할 게 아니라 내수 시장부터 노려야 했을까’ 고민을 말한다. “국내 중견 게임기업 마케터가 손 벌벌 떨며 3억을 쓸 때 중국 기업에선 30억씩을 태운다”는 현실도 설명한다. 더 이상 YTN 기자가 아닌 게임 스타트업 김 사업실장의 요즘 일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그는 “게임이란 상품이 시장에 나올 때 필요한 프로세스를 총괄한다”며 “사실 정부 지원사업 문서를 쓰는 게 제일 중요하다. 작은 게임회사들은 게임 론칭 전엔 수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도 몰랐는데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더라(웃음)”라고 덧붙였다.


모바일 게임 스타트업 머스트게임즈 김수진 사업실장이 지난 14일 회사가 위치한 경기 안양시 연성대학교벤처센터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 후 사진촬영에 임한 모습.

만 23살이던 2003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YTN 기자가 됐다. 사회부와 전국부에서 일했고, 편집부, 문화부, 국제부를 거쳤다. “정치(부)경제(부)나 법조는 한 번도 못 가봤고, 전통적인 의미에서 하드코어한 출입처를 많이 경험한 기자는 결코 아니었다.” 대신 보도국 조직에서 살짝 벗어난 자리가 주로 그의 차지가 됐다. 데이터저널리즘팀 근무와 편성제작국 자원 등이 사례다. 사내 온갖 TF란 TF엔 1순위로 불려 다닌 기자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달의 기자상’(‘우리동네 유독물 공장지도’, 2014년 7월)과 ‘올해의 방송기자상(‘비극의 재구성:펀치볼 지뢰 피해지도’, 2016년)을 받았고, 국정농단 당시엔 ‘최순실-박근혜 일가 공동 재산설’을 뒷받침 할 증언을 단독보도하기도 했다.


2012년 전국언론노조 YTN지부 홍보국장을 맡는 등 노조 활동에도 적극 나섰던 그는 해직 사태가 해결되고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부풀던 2017년 대선방송팀 근무를 끝으로 1년 간 휴직에 들어간다. 그리고 복직하지 않았다. 가까운 이들은 ‘이제 살만해 질 텐데 왜’라고 물어왔다. “선배들이 복직할 때까지 ‘술을 많이 먹거나 울지 않겠다’ ‘흐트러지지 않겠다’ 각오를 했는데 끝나니까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기자로서 이룬 건 없지만 직업윤리는 지키려 했고 과업이 완료됐으니 그만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중략) 그냥 전 ‘왜 명절엔 고속도로 중계를 타야되는지’ ‘왜 사건사고 나면 장례식장에서 유족을 취재해야하는지’처럼 생각이 많은 기자였어요. 특히 인간에 대해 잔인해지는 그런 부분을 끝까지 극복 못한 기자였어요.”


퇴사 후 2018년 6월, 그는 ‘머스트게임즈’의 8번째 멤버로 새 커리어를 시작했다. 취재원으로 알던 현 대표이사가 창업 후 PT 코칭 등을 부탁해 도와주다 아예 코파운더(co-founder)로 합류하게 됐다. 회사는 모바일 퍼즐 게임 ‘가우스전자 with NAVER WEBTOON’을 비롯해 현재까지 게임 2개를 론칭하며 어느새 30여명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엔 ‘와디즈 펀딩’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게임을 잘 알거나 즐겨서” 온 건 아니었다. 기자 시절부터 쭉 관심사였던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콘텐츠로 밥벌기’의 전략을 배울 수 있다는 이유가 컸다. 개발자 중심이자 ‘상하’가 없는 조직을 겪고 보니 언론사 조직문화에 대한 할 말도 더 늘어났다.


16년간 YTN기자로 지낸  김 실장은 지난 2018년 게임계로 들어와 SF 전략게임 ‘로그 유니버스’ 론칭 등에 관여했다. 홍보와 마케팅, 펀딩 등 개발 영역 외 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게 그의 일이다.

“제겐 사실 고민의 연장선상이에요. 늘 IT분야 관심이 많았고 모바일 시대 언론사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유심히 봤어요. 게임산업이 한국 콘텐츠 전체 수출규모의 60% 가량을 차지하는데 여긴 왜 돈을 버는지 배울 수 있겠다 했어요. 좋은 멤버들인데 망하겠다 (웃음) 걱정도 됐고요. (중략) 사무실에서 숨이 편히 쉬어지더라고요. 공채 문화도 없고 내 위 내 밑에 누구 없이 동등하니까. (언론사가) ‘펜기자 헤게모니’를 없애지 못한다면 존립할 수 있을까 생각이 더욱 강해졌어요.”


2,30대 대부분인 16년을 온전히 기자로 보낸 그는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에 “그 카페 뒷배경에 공원이 있어 (사진)배경으로 괜찮다”는 말이 튀어나오고 “사건사고가 터지면 보도국에 있어야 될 거 같은” 마음이 여전한 방송기자 출신이지만 현재를 부인할 순 없다. 다만 가슴 속 담은 문제의식과 일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15일 경기 안양시 연성대벤처센터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 실장과 예전 김 기자는 적어도 이 점에선 차이가 없어보였다. 직업과 직함은 우리를 상당히 규정하지만 어쩌면 진정 중요한 건 여기 눌려 ‘나’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는 것일 게다.


“언젠가 언론사들은 디지털 콘텐츠 기업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길을 먼저 걸어갈 뿐이라고 생각하고요. (중략) 많은 스타트업에선 기자가 가진 제너럴리스트 능력을 필요로 해요. 출입처 출입처럼 일단 부딪치고 공부는 그때그때 하면 되니 너무 겁내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이 가장 빠른 (이직)순간이니 용기를 내란 말도요. (중략) 나중에 제 묘비명을 누가 쓰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되는 애’라고 쓸 거예요. 망하든, 월급이 끊기든 일단은 먹어보는 중인 거고요.(웃음)”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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