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사람 좀 말려주세요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남미대륙을 휘젓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남미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새로운 진원지로 지목한 가운데 브라질에서 나타나는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언제쯤 정점에 도달할 것인지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상황이 국내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웃 나라들까지 불안하게 만들면서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구 2억1000만의 브라질이 지역 리더십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바탕에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코로나19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WHO와 보건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했다. 경제활동 재개 필요성을 내세워 지방정부의 봉쇄 조치에 반대했고,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는 의료계의 평가에도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말라리아 치료제 처방을 고집했다. 의사 출신 보건장관들은 대통령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2명의 장관이 한 달 간격으로 사임하면서 ‘코로나19 사령탑’ 부재 현상을 초래했다. 그러는 동안 브라질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갈팡질팡했고 인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은 기대조차 힘들게 돼버렸다.


코로나19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주말마다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벌어지는 친정부 집회와 시위에 ‘노 마스크’로 참석해 지지자들과 포옹·악수하는가 하면, 시내 상점과 노점상들을 찾아가는 거리행보를 계속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은 날에는 브라질리아의 인공호수에서 제트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포착돼 비난과 조롱을 자초했다. 코로나19 대응 방식을 둘러싸고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상파울루 주지사는 “우리는 코로나19와 보우소나루라는 2개의 바이러스와 싸워야 한다”며 전면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여론은 갈수록 등을 돌리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 정부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5%·보통 23%·부정적 50%로 나왔다. 긍정적 평가가 20% 아래로 내려가면 회복이 어렵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22년 말까지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남은 임기에 대해서도 긍정적 기대치는 27%에 그쳤고 부정적 기대치는 48%로 나왔다.


2018년 말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복음주의 개신교 세력에서도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 30여개 단체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보우소나루 정부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정의와 동정심을 실천하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관련 과학적 연구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보건 전문가들의 권고에 반하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발언은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비윤리적인 행태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따랐다.


정치권에서는 탄핵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하원의장에게 제출된 대통령 탄핵 요구서는 40건에 육박하며, 대부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무책임을 사유로 들었다. 대통령 탄핵 절차를 시작할 것인지 여부는 하원의장의 결정에 달렸다.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려면 하원에서 전체 513명 가운데 3분의 2(342명) 이상, 상원에서 전체 81명 가운데 3분의 2(54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각료직 배분으로 중도 정당들을 끌어들이면서 탄핵 압박에 맞서고 있다. 탄핵 절차가 시작되면 표결을 통해 부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브라질에서는 1950년 헌법에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 조항이 포함된 이후 지금까지 1992년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과 2016년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등 두 차례 탄핵이 이뤄졌다.


탄핵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들어 자진사임을 촉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시민사회와 폭넓은 연대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압박해 스스로 물러나게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자들의 단골 집회 장소인 브라질리아 대통령궁 앞 광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보우소나루 아웃’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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