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이다. 이는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편견이 차별과 배제, 폭력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장치다. 특정 인물에 대한 보도뿐 아니라 성소수자와 관련한 이슈를 다룰 때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인권보도준칙에 비춰봤을 때, 지난달 7일 국민일보의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기사는 분명 부적절하다.
코로나19 보도에서 언론들은 초기부터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해왔다. 편의점과 커피숍의 위치, 상호명은 물론 확진자가 이용했던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공개되기도 했다. 앞서 유흥주점 종업원의 감염 사례가 발생했을 때도 상호명과 위치가 공개됐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어떤 사람이 모이는지, 어떤 양태의 영업을 하는지는 감염병 예방과는 무관하다. 지난 4월 제정된 감염병 보도준칙 역시 “과도한 보도 경쟁으로 피해자들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고 권고한다.
기사의 파급은 적지 않았다. MBN은 같은 날 저녁 뉴스에서 <게이클럽 다녀간 뒤 확진… 제2의 신천지 우려>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방영했다. 여기서도 앵커멘트와 원고에서 재차 게이클럽이 언급됐다. 이 외에도 <코로나 확진자, ‘이태원’ 게이클럽 방문…용산구 “역학조사 중”>(뉴스1), <코로나19 확진자 이태원 게이클럽 방문…당일 500여명 다녀가>(한국경제) 등 ‘게이클럽’을 명시한 기사는 신문, 방송, 통신을 가리지 않고 재생산됐다. 모두 국민일보가 첫 보도를 했던 7일 하루에 벌어진 일이다.
국민일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9일 기사 제목은 <“결국 터졌다”... 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였다. 이 기사는 첫 문장부터 “남성 간 성행위자들이 집단 난교를 벌이는 찜방에서”로 시작한다. 기사는 “업소가 휴게텔로 분류돼 방역 당국의 통제에 벗어나 있다”거나 “성행위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 등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하다”라며 감염 예방 목적을 부각한다. 하지만 ‘집단 난교’, ‘성행위’ 등 단어를 사용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려 했다는 혐의가 짙다.
이러한 기사의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낙인은 방역에 직접적인 지장을 초래한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차별과 배제는 코로나19 감염을 숨기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방역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노조에서도 “성적지향과 관련한 정보를 언급하면서 해당 시설 방문자들이 검사를 꺼려 방역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애초에 이런 우려는 국민일보 기사 안에 들어있었다. 문제의 기사에서 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장은 “이들은 신천지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자신의 독특한 성적취향이 외부에 드러날까 봐 방문 사실조차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낙인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다보니 자기부정의 모순적 기사가 나온 것이다.
낙인과 편견, 혐오의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벽을 무너뜨릴 책임이 오직 언론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언론이 벽을 쌓아 올려서는 안 된다. 기독교 신문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치지향이 사회와 갈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만큼이나 성소수자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 ‘사랑·진실·인간’을 사시(社是)로 하는 국민일보는 이제 차별과 혐오를 뛰어넘는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다. 비단 국민일보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