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을 베어야 할 때

[글로벌 리포트 | 일본]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요즘 일본에선 ‘포스트 아베’ 논의가 한창이다. 2012년 12월 재집권 이후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으면서 ‘아베 1강’ 구도가 서서히 종식되는 형국이다. 치명상을 입힌 건 역설적이게도 ‘아베 호위무사’, ‘관저 수호신’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 검찰 2인자인 그를 검찰총장에 앉히고 싶어 한 아베 총리는 올해 초, 법적 근거 없이 정년을 늘려줬다. 비판이 컸지만, 이번엔 검사 정년 연장을 제도화하는 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정치적 도박’까지 감행했다.


구로카와 역시 도박을 했다. 그냥 ‘도박’이었다. 일본 주간지 ‘문춘’(文春)은 구로카와가 지난달 1일과 13일, 기자 3명과 심야 ‘내기 마작’을 했다고 폭로했다. 코로나19 긴급사태로 국민적 자숙 분위기가 한창이던 때였다. 사표를 낸 건 당연했다.


문제는 기자다. 3명 중 1명은 아사히(朝日), 2명은 산케이(産經)신문 소속이었다. 두 신문은 논조와 독자층에서 일본의 양극단을 대변한다. 툭 하면 ‘지면 전쟁’을 펼치기 일쑤다. 그런 기자들이 검찰 권력과 마작판에 둘러앉아 사이좋게 패를 돌렸다는 사실에 독자들의 배신감은 상당했다.


아사히 기자는 이 일로 정직 1개월 중징계를 받았다. 상사도 견책 처분됐다. 최근 3년간 월 2~3회 상습 내기 마작을 즐겼고, 한 판에 수천엔에서 2만엔(22만원) 정도의 판돈도 걸렸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아사히는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과 내기 마작을 한 것은 보도 독립성과 공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행위였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산케이는 달랐다. 문춘 폭로 다음 날 1면 칼럼에 “현장 기자는 취재원으로부터 정보 취득을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담당 검사 취미가 등산이면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르고, 바둑을 좋아하는 수사관에 맞춰 바둑 유단자가 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도박이 일종의 취재 행위였다는 항변이다. 징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두 신문사가 보인 태도에 관한 판단 역시 독자의 몫이다. 다만 이 일은 언론계의 ‘그레이 존’(영역 구분이 어려운 상태)을 또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운이 꽤 남았다. 어디 산케이뿐이겠나. “검든 희든 쥐를 잘 잡는 게 좋은 고양이”, “창문 열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파리도 들어온다”고 했던 덩샤오핑 철학이 우리 언론에도 꽤 뿌리 깊다.


취재는 나에게 말해줄 ‘의무’가 없는 사람과 벌이는 심리전과 같다. 신뢰를 쌓아 상대 마음을 이완시키는 과정이다. 권력 내면에 잠재된 문제를 알려면 더더욱 그렇다. 당장 경찰서에 가면 생면부지의 형사가 ‘형님’이 되고, 국회에 가면 공통점 하나 없는 의원을 ‘선배’라 부르지 않았나. 현실이 그렇다.


실제로 ‘스킨십’에 열심인 동료를 여럿 봐 왔다. 밤마다 폭탄을 말아먹거나, 주말이면 골프채를 휘두르는 기자. 결혼식, 돌잔치, 상갓집을 꼼꼼히 챙겨 다니는 기자. 모든 취재원의 개인 신상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학교·고향·취미 등의 공통점을 기막히게 엮어내는 기자. 방법은 달랐다. 일부는 ‘민완 기자’로 이름을 날린 반면, 일부는 ‘폴리널리스트’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뉴욕타임스의 ‘윤리적인 저널리즘’ 핸드북은 이 문제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다. ‘취재원과 개인적 친분’(Personal Relations with Sources) 항목에서 “업무시간 외 취재원을 상대로 ‘비공식’ 취재를 하는 건 기자의 빼놓을 수 없는 기능”이라고 했다. 다만 “정기적으로 한 발 물러서서 그 행위를 재고하고, 취재원에 너무 가깝게 위치한 건 아닌지 엄격하게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나 어딘지 모르게 맹숭맹숭한 해답. 이번엔 어떨까. 배우 심은경이 주연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의 실제 모델인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 도쿄신문 기자는 마작을 한 동료에 대해 이렇게 썼다.


“마음이 통한 상대(취재원)라도 언젠가 내 기사로 베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그럴 각오가 이들 3명에게는 없었다. 붓이 무뎌지면 단지 ‘유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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