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기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강압 취재와 검언 유착 의혹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던 채널A 기자가 삼성SDS 홍보팀 직원들이 자신의 생일파티를 축하해주었다며 관련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비난이 일자 “행실을 조심했어야 했다”며 삭제했다. 그는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유력인사의 비리를 알려달라고 했던 이모 기자의 법조팀 후배로 부적절한 취재에 참여한 당사자다.


채널A는 지난달 25일 진상조사 보고서를 공개하며 소속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을 인정했다. 앞서 김재호 대표이사 사장은 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기자협회 채널A지회는 “동료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 취재관행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채널A가 증거가 없다며 밝히지 못한 기자와 현직 검사장의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모 기자에 이어 법조팀장, 사회부장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숙해도 염치가 없는 판에 삼성SDS 홍보팀 직원들과 생일파티를 했다며 자랑질하는 사진을 올렸다니 어느 시대를 사는 기자인지 모르겠다. “친분 있는 분들과 인사한 자리”라고 해명했으나 누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홍보팀 직원들과 밥술을 나눠 마시며 끈끈한 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자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MBC 기자가 성착취 영상이 유통된 텔레그램 ‘박사방’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2월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때 해당 기자는 “취재 목적으로 70여만원을 송금했지만 운영자가 신분증을 추가로 요구해 최종적으로 유료방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 2명을 포함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달랐다. MBC는 지난 4일 입장을 내고 “(해당 기자가) ‘박사방’ 가입비 송금을 통해 회원계약을 체결했고 ‘박사방’에 가입하여 활동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취재목적으로 ‘박사방’에 가입했다는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기자가 성착취 실태 취재가 아닌 성착취 영상을 소비하려고 텔레그램에 ‘잠입’했다니 참담하다. MBC는 이 사건의 엄중함을 인식해 자사 임직원의 비윤리적인 개인일탈행위 재발방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일 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소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소장의 안타까운 죽음은 언론의 취재관행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로 울리고 있다. “무엇보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쏟아지는 전화와 초인종 벨소리, 카메라 세례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의기억연대가 낸 부고 성명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지난달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운동 인권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의혹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한 취재 경쟁이 불붙었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레기’는 죽은 언어가 됐고 이제는 ‘기더기’라는 멸칭이 새로 등장했다. 언론의 공신력과 기자들의 자존감은 수직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자 놀음에 취해 밥술을 얻어먹고 좋다며 희희낙락거리는가 하면 본질과 관계없는 기사를 쏟아내며 진영논리의 스피커 노릇을 한다. 콘텐츠는 어떤가. 조회수를 올리려는 기사들이 양질의 기사를 좀먹고 있다. 마주하는 현실은 천지개벽했는데 과거의 시대를 붙들고 있는 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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