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전 겨울 수습기자 시절, 매일 새벽마다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괴로웠던 것은 ‘영안실 보고’였다. 취재구역 내 주요 병원의 영안실을 돌면서 느낌이 심상찮은 빈소가 있으면 상주에게 망자의 사인을 확인해야하는 일이었다. 새벽 3, 4시. 문상객도 아닌 사람이 다짜고짜 고인의 사인을 물어보는 일이 상주에게는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까. 묻는 나로서도 입이 안 떨어지는 일이었지만, 보고를 못해 선배에게 추궁 당할 생각을 하면 평소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도 하게 됐다. 동기들 중에는 그러다가 상가에서 멱살잡이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안실에서 무슨 대단한 기삿거리가 나왔겠는가. 결국 그런 훈련과정을 합리화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 돌파하는 기자로서의 ‘근성’을 기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사 감각이 몸에 익을수록, 개별적인 인간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 사람이 한 우주인 그 개별성을 다 느꼈더라면 나는 우연한 사건이 짓이겨 놓는 삶의 불가해함,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의 폭력성이나 비열함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놀라지 않으려면 마음은 무뎌져야했다. 기자생활 몇 년 만에 나는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복잡한 사안이라도 파고들어 가다보면 결국 돈 아니면 이권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고, 갈등의 양극이 어떻게 공격과 수비를 하는지 따라가면 되었다. 한 사람의 생애가 담고 있는 복잡성은 그 간단한 공식에 담길 수 없는 것이었다.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익숙한 공식에 따라 급하게 판정했다.
위안부 생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정의기억연대가 내놓은 성명 중 한 대목은 한국의 취재 관행에 비추어 보건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쏟아지는 전화와 초인종 벨소리, 카메라 세례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기자들에게는 익숙한 취재 경쟁이지만 평생 언론의 조명을 받아보지 않고 살던 사람들 중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을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디까지가 ‘적절한’ 취재인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윤리는 명시적이지 않고, 판단은 기자 개인에게 맡겨진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취재원일수록 취재 경쟁의 와중에 약한 고리가 되어 끊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취재 대상자가 희생될 때, 기자들은 ‘하이에나’라고 손가락질 당한다. 이런 취재 환경에서 취재원만 다칠까. 기자도 상처 입는다. 2014년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팀이 세월호 참사 취재에 참여한 언론인 270명을 대상으로 심리적 외상의 정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취재기자의 45.9%가 심각한 외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뜨이는 것은 센 척하는 기자들이 더 아플 수 있다는 결과였다. ‘유능한 기자는 아무리 어려운 취재 과제가 주어지더라도 이를 완수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직업관을 가진 기자들일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리적 외상이 깊었다.
“인터뷰 대상자를 돌보고, 당신 자신을 돌보고, 서로를 돌봐야 합니다.”
저널리즘과 트라우마의 관계를 연구하는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의 다트센터가 코로나19 와중에 원격으로 희생자의 가족들을 취재해야하는 기자들에게 제시한 인터뷰 수칙이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모든 취재에 적용해야할 조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