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언론의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정 의원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 11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정 의원에게 묻는다. “악의적 보도”란 무엇인가. 정 의원이 정의하는 “악의적 보도”의 정의가 궁금하다. ‘악의적’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봤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마음을 가진 것.” 둘째, “옳지 않거나 좋지 않은 의미나 의도를 가진 것.” 이 정의에서 보듯, ‘악의적’이라는 기준은 숫자 등 객관적이고 정량(定量)적으로 계량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닌, 주관적인 정성(定性)적 평가다. 정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위법성, 의도성, 악의성이 명백한 경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 기자들에게 물었다. 뉴욕타임스(NYT)와 미국의소리(VOA) 등 유수의 언론사에서 현직 백악관 출입기자이거나 에디터로 재직 중인 3인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인용한다. A 기자의 경우 “미국 기자들은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는다”며 “명예훼손을 제기할 길은 물론 열려 있지만 그 문턱은 굉장히 높다”고 했다. B 에디터는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승소는 무척이나 어렵다”며 “그 기자와 언론사가 악의를 갖고 해당 보도를 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은 원고의 책무이며, 승소는 어렵다”고 말했다. C 에디터는 “미국에서 법은 기자들에게 손해를 입힌다기 보다 기자를 보호하기 위한다는 개념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한국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있다니, 우려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징벌적 처벌(punitive charges)은 한국 사법 체계의 근간이 된 대륙법이 아닌 영미법에 있는 개념으로, 미국에선 언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법학 교과서 등에서 자주 인용되는 징벌적 처벌의 대표적 사례는 일명 ‘맥도널드 커피 사건’이다. 1992년 미국에서 70대 여성이 맥도널드의 커피를 마시다 다리에 쏟아 신체의 6% 이상 부위에 3도 화상을 입고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맥도널드에게 손해배상금 16만 달러와 징벌적 손해배상금 48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징벌적 손해배상금까지 매겼던 이유는 맥도널드가 당시 제공했던 커피 온도(82~88℃)가 화상을 일으킬 우려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맥도널드는 커피 온도를 20℃ 낮췄다.
이 같은 정량적 기준을 언론 보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물론 일부 기자들이 실제로 불순한 의도로 가짜 뉴스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음을 우리는 자각하고 있으며, 뼈아픈 반성과 척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는 잣대는 신중히 다뤄야 한다. 불편한 보도라면 악의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게 인지상정이어서다. 불편한 진실이라면 취재원의 불쾌 또는 유쾌 여부를 떠나 사회의 정의를 위해 밝혀져야 한다. 정 의원의 법안이 언급한 ‘악의성’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수준일 수 있다는 우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언론 탓은 쉽다. 그러나 “국민은 딱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갖는다”는 말처럼, “정부는 딱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갖는다”는 말도 가능함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