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빠질 때, 누가 옷을 입고 있었나

[이슈 인사이드 | 금융·증권]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위기가 오니, 또 터졌다. 불완전판매 이슈 말이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세계경제가 흔들린 지난해부터 독일국채연계증권(DLF), 라임펀드에 이어 각종 사모펀드들이 손실을 내면서 가입자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라임펀드의 경우 매니저가 펀드의 돈을 빼돌리고 수익률을 조작하는 희대의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판매단계에도 문제가 있었음이 금융당국의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키코사태를 계기로 ‘불완전판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말이 됐지만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불완전’과 ‘완전’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경제 행위를 수식했기 때문이다. 부정판매, 사기판매, 불법판매라고 하면 직관적일 텐데 굳이 이 어색한 말을 썼을까.


민법상 사기나 불법까지는 아니어도 금융회사의 잘못된 판매행위를 규율해야 할 필요 때문이다. 불법과 사기만 한정에서 문제를 삼는다면 금융회사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금융상품을 권유, 판매하는 행위를 규제하기가 힘들다. 그물망이 너무 성기면 회색지대의 잘못된 행위를 잡아 낼 수가 없다.


불완전판매라는 용어가 일반 소비재 혹은 의료 등 다른 서비스에는 쓰지 않고 금융상품에 특정해서 사용되는 이유는 그만큼 금융이 특별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금융상품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물이 아니어서 소비자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이해도가 천차만별이다. 마세라티는 초보나 베테랑 운전자, 누구나 몰 수 있지만 금융상품은 그렇지 않다. 예금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지만, 금융담당 기자들이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가 안가는 고난도 상품도 수두룩하다.  


금융상품이 일반 소비재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위험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2008년 환율이 달러당 1400원을 넘나드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키코 사태도 없었고, 전대미문의 마이너스 금리가 없었다면 DLF 가입자들은 아무일 없이 연 4%의 수익을 챙겨갔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부실한 고리들이 드러난다.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금융회사들이 수수료에 눈이 멀어 면밀하게 검증하지 않은 금융상품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팔아제꼈던 행태가 참담한 끝을 맞게 됐다.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대가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크다. 금융회사들이 라임펀드 판매로 올린 수수료 수익은 약 600억원, 반면 물어줘야 할 돈은 수 천 억원이다. 저금리 속에서 불어난 유동성이 위기의 순간, 금융시장에서 일시적으로 빠졌을 때 수면 아래 감쳐줘 있던 민낯이 나타난다. 부실한 리스크 관리와 허술한 소비자보호 장치 속에 유동성파티가 벌어졌음이 이제야 노출됐다. 워렌 버핏의 말 대로 물이 빠지면 누가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된다.


경제신문에서 일하면서 나 역시 크게 물이 빠지는 시기를 두 번이나 겪었다. 2008년, 무역분쟁과 코로나로 흔들린 2019~2020년. 독자들을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변화 자체를 밀접하게 전달하는 역할과 감시자로서의 역할, 모두 담당 기자의 몫이다.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나니, 전자의 역할에 너무 치중하다가 후자를 놓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뉴스의 속성상 새로운 것, 지금 잘 나가는 것에 대한 기사 작성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숱하게 썼던 ‘불완전기사’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물이 빠진 후엔 언론도 쌩얼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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