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히틀러의 평행이론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최근 페이스북이 도널드 트럼프 캠프의 광고를 삭제했다. 문제가 된 광고는 극좌단체인 안티파(Antifa·반파시스트 성향의 정치집단을 총칭)를 공격하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정치범을 분류할 때 쓰던 빨간색 역삼각형 문양을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조지 플로이드 살해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폭동을 일으킨 이들의 배후에 안티파가 있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페이스북은 “조직적인 증오를 금지하는 규정을 위반했다”며 해당 광고와 관련 포스트를 전면 삭제했다. 이에 트럼프 캠프 측은 안티파가 사용하는 상징인 줄 알았다는 ‘비겁한 변명’을 내놓았지만 트럼프와 나치, 어쩐지 낯설지 않은 조합이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시절부터 자주 히틀러에 비유됐다. CNN 앵커 돈 레몬은 트럼프 지지자와 대통령의 말을 여과없이 전달하는 언론을 비난하며 트럼프를 히틀러에 빗댄 바 있다. 크리스티 휘트먼 전 뉴저지 주지사 역시 “트럼프에 비하면 히틀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린 적 있다. 그만큼 둘 사이엔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트럼프와 히틀러는 인종주의에 기댄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불만과 증오를 먹고 자란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에 따른 배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세계 대공황까지 겹친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 속에서 정부에 불만을 가진 대중에 호소하며 권력을 잡았다. 트럼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불평등한 분배 구조와 오바마 행정부를 겪으며 피해의식을 키운 중산층 이하 백인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됐다.


얀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교수의 지적처럼, 포퓰리즘의 특징은 ‘편가르기’에 있다. 엘리트를 비판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포퓰리스트들에게 ‘국민’의 범주는 매우 제한적이다. 히틀러에게 유대인은 자신의 국민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이민자, 흑인 등 소수자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배제를 일삼는 것은 그들은 트럼프가 재건을 꿈꾸는 ‘위대한 미국’의 국민이 아닌 탓이다. 때문에 포퓰리즘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집단간의 갈등과 반목, 증오는 일상이 된다. 미투(MeToo) 운동과 흑인차별반대 시위(Black Lives Matter)가 트럼프 정부에서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뉴욕타임스의 지적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일상적인 편가르기와 반목은 비정치적인 영역마저 정치화하며 갈등을 조장한다. 바이러스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착용이 권고되는 마스크가 미국에서는 정치적 상징이자 분열의 소재가 된 것이 그 예다. 이는 마스크 착용을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로 치환하면서 이를 거부해온 트럼프와 마스크 착용을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좌파의 상징’으로 규정한 보수 언론인들의 합작의 결과다. 이에 따라 마스크 착용 여부로 당파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웃지못할 여론 조사 결과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히틀러와 또 한 번 닮았다. 히틀러는 당시의 ‘뉴미디어’였던 라디오를 저가에 보급해 독일 국민들에게 선동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했다. 트럼프는 라디오 대신 다수의 사람들에게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를 교묘히 활용해왔다. 하지만 그런 그가 최근 이러한 소셜미디어의 특성을 이용한 대중의 역공을 당했다. 노예해방 기념일인 지난 19일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예정돼 있던 트럼프의 선거 유세에 “등록만 하고 참석을 하지말자”는 메시지가 소셜미디어 틱톡을 통해 확산되면서 그 이튿날로 미뤄진 유세가 흥행에 참패한 것이다.


역사가 증언하듯, 증오와 반목을 기반으로 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히틀러의 거짓 선동과 독재정치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그의 자살로 끝이 났다. 트럼프의 증오 정치는 자신이 그어놓은 선 밖에 놓인 자들의 분노와 불신이 가진 반작용 때문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사회 곳곳에서 비어져 나오는 파열음들은 그 시작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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