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미식가로 알려진 장 브리야사바랭(1755〜1826)이 한 말이다. 한국의 상황을 반영해 변주해보면 “당신이 어떤 신문을 보는지 말하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쯤이 되지 않을까. 이 말이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나왔다.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얘기다.
주목할 만한 조사 항목이 있다.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와 ‘특별한 관점이 없는 뉴스’,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 가운데 어느 것을 선호하냐는 질문에 한국의 응답자 44%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택했다. 조사 대상 40개국 중 한국보다 이 비율이 높은 나라는 터키(55%)와 멕시코(48%), 필리핀(46%) 뿐이다. 평균인 28%에 비교해도 눈에 띄게 높다.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고 답한 비율은 4%에 불과하다. 지독한 수준의 뉴스 편식이다.
이런 편향성은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대선에서 승리한 세력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대통령제, 그리고 소선거구제와 맞물린 양당제의 영향이 클 것이다. 무엇보다 분단과 6·25 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는 이념의 충돌로 점철되어 있다. 권력투쟁을 넘어 생존투쟁의 양상을 보인 정치 상황 아래서는 국민들의 선택 역시 극단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한국이 유난하긴 하지만 뉴스 이용의 편향성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의 정치학자 모건 마리에타와 데이빗 바커는 공저 <One Nation, Two Realities(하나의 국가, 두 개의 현실)>에서 이러한 현상을 ‘사실인식의 양극화(dueling fact perceptions)’라고 이름 붙였다. 이들은 사실 인식이 경험적 증거와 상관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와 신념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사실을 파악한 뒤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에 부합하는 사실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특수성과 결합해 증폭되고 언론사들은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를 ‘해장국 언론’이란 말로 비판했다.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해장국 같은 뉴스만 찾다보니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뉴스는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 뉴스에 언제든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일 준비가 되어 있는 국민들에게 언론을 신뢰하는지를 물으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언론 신뢰도가 40개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한 건 당연한 귀결이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해결도 난망하다.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성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 배경을 살펴보는 일은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강 교수는 “해장국 언론을 원하는 국민이 다수인 상황에서 언론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일갈했다.
뉴스 이용자의 편향성 문제는 사회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중대하다. 하지만 이를 지적하기에 앞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언론 역시 문제의 일부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뉴스 이용자의 습관에 편승해 스스로 ‘해장국 언론’이 된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제대로 비판하고 경계하는 일 역시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정파성은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언론은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지 못해 결국 사회 현실을 왜곡시킨다. 갈등을 부추기는 선정적 상업주의가 ‘정론(政論)’으로 포장돼 유통되는 건 아닌지, 사안마다 잣대가 달라지는 ‘내로남불’이 언론을 통해 재생산되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언론 스스로 변화 노력을 보여줄 때라야 뉴스 이용자의 편향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힘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