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다운 것들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이서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이서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영화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찰리의 초콜릿 속에 들어있던 마지막 황금 티켓,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가 받아 든 호그와트의 입학 허가서.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의 멘들스 케이크 상자. 어떤 소품은 단 한 장면 스쳐 지나가더라도 관객에게는 영화 그 자체가 되곤 한다.


매주 신간 수십 권이 쌓이는 문화부 공용 책상에 최근 특별한 책이 한 권 도착했다. 윌리 웡카의 비밀스런 초콜릿 공장으로 초대하는 황금 티켓처럼 비밀스런 초대장이 들어 있는 책이었다. 영화와 드라마 전문 그래픽 디자인 아티스트로 활약하는 애니 앳킨스가 그간의 작업물을 소개하며 영화 소품 디자인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 ‘애니 앳킨스 컬렉션(시공사)’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배경인 가상 국가 주브로브카 공화국의 화폐와 우표, 멘들스 박스, 마담 D.의 유언장 등 영화에 등장하는 온갖 소품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릿지’에서는 서독의 식품 포장용기, 벽에 새겨진 총알 자국, CIA 바닥에 장식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소품 하나에도 영혼을 담는 애니 앳킨스의 작업이 알려지면서 관객들은 아주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스크린 안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모든 작은 것들을 보살핌으로써 훨씬 더 큰 그림을 완성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진심으로 노력하거든요”-애니 앳킨스.


현장을 뛰며 쉼 없이 기사를 내보내는 기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언론사의 처음과 끝이라는, 영화의 주연이라는 착각 속에 산다. 매일 신문 시스템 안에서 마감을 하는 일간지 기자의 신분이지만 최근 운 좋게 신문을 벗어나 1년 간 출판업의 출간 시스템을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회사 시스템 밖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날것 그대로 세상 앞에 선다는 의미였다. 데스크의 귀찮을 만큼 이어지는 질문도, 편집부의 날카로운 제목도, 어문연구팀의 꼼꼼한 교열이, 기사에 잘 맞춘 정장처럼 딱 들어맞는 사진부의 사진들이 이내 그리워졌다. 천둥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완성된 기사가 전달되는 과정은 또 어떤가. 정성껏 쓴 기사를 온오프라인으로 알리는 마케팅 부서와 디지털뉴스팀이 없다면, 아침마다 신문을 독자의 집으로 배달해주는 수고로움까지 이 모든 과정에 단 하나의 위기만 겪더라도 기사는 온전한 모습으로 독자에게 전달될 수가 없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마지막 장면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듯했다.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한 사진 ‘삶의 정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16년 간 회사의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자리에서 네거티브 필름을 관리해 온 월터 미티. 이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숀 오코넬은 월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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