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어떤 인물에 관한 글을 읽는데, 정작 그 인물보다 글쓴이가 더 궁금해질 때가. SBS의 디지털 연재기사 ‘그, 사람’을 보면서 그랬다. 너무나 유명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관한 낯선 질문과 새로운 시선. 신문 2개 면을 꽉 채울만한 장문의 글을 한 호흡에 읽어내려가게 하는 단단한 필력. 기사에 달린 “품격과 깊이가 느껴지는 인물평”이란 댓글에서 보듯 깊은 내공을 알아챈 독자가 한둘이 아니었지 싶다.
윤춘호<사진> SBS 논설위원은 30년차 방송기자다. 연차가 곧 내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 터. 듣자 하니 자신을 ‘문청’으로 소개하며 은퇴 후의 꿈이 전업 작가라고 한다. 앞서 두 권의 책을 내고, 2주에 한 번씩 ‘그, 사람’을 연재하는 것도 “글 쓰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다. 근육은 쓰지 않으면 금세 퇴화하니까. “글 쓰는 재주도, 자랑할 것도 없다”는 그가 인터뷰 요청에 선뜻 응한 것도 아마 그런 결심을 공공연히 해두려는 요량이 아니었을까.
윤 위원은 지난 4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시작으로 강우일 천주교 제주 교구장까지 여섯 명에 관한 글을 썼다. 그중 절반은 직접 만났고, 절반은 만나지 못했다. 김훈 작가에게는 어떤 말로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했는지도 털어놨다. 어찌 보면 ‘인터뷰 실패기’인 셈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훈의 모든 글과 말, 행동, 표정,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증언 속에 ‘그’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이나 자료가 부족해서 쓰지 못 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다만 “뭔가 다른 게” 필요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들여 관찰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손이나 표정이 아주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김훈이 TV 뉴스에 출연해 탁자에 몸을 기댄 채 구부정하게 앉아 있던 모습에서 “남의 우리 안에 들어와서도 자기의 룰로 싸우는 사람”이란 걸 읽어내는 식이다. 남다른 시선과 관찰 덕분일까. 그의 글은 기사라기보다는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대상도 조금은 남다르다. 4월 총선이 여당의 대승으로 끝나고 언론의 관심이 ‘차기 대선 유력주자’인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에 쏠려 있을 때 그는 “전쟁터의 피로만이 얼굴에 가득”한 이해찬 대표를 주목했다. 그리고 민주당 소속이면서도 “노무현을 팔지 않고 문재인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정치하는 사람” 김해영 전 의원을 만났고, 문 닫기 직전 기사회생한 월간지 ‘샘터’의 김성구 대표를 찾았다. 유명인이지만 그렇다고 뉴스의 중심에 있지도 않은 인물들. 그는 “뉴스를 따라갈 생각은 없다. 뉴스의 그늘 속에 있는 사람에 관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명단에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도 있다. 강남역 철탑에서 1년간 고공 농성을 벌인 그를 기회가 되면 꼭 만나 제대로 한번 써보고 싶다고.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그의 역사관도 비슷하다. 앞서 펴낸 두 권의 책이 말해주듯 그는 “잊히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 대한 평전을 제대로 써보고 싶기도 해요. 1등에게 가려진 2,3등의 스토리도 재미있잖아요.”
“A4로 2장 이상 글을 써본 적 없는” 방송기자로만 30년을 살아온 그는 요즘 한 번에 원고지 40~50매 분량의 글을 쓰며 자신에게 맞는 호흡을 찾아가고 있다. 글을 쓰고 나면 리포트라 생각하고 속으로라도 소리 내서 꼭 읽어본다. “술술 읽히면 좋은 문장이고, 덜컥거리면 안 좋은 문장”이다. 이렇게 글 쓰는 근육을 키워가다 때가 되면 세 번째 책도 낼 생각이다. “정말 프로페셔널 작가가 되고 싶어요. 많은 돈을 벌면 좋겠지만 그것까진 바라지 않고요. 명함에 ‘작가’라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꾸준히 글을 쓰면서 그 기반을 다지고 싶습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