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충격파 속에서도 사회 구성원 각자가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함은 상식이다. 기자의 소임 중 하나가 진실을 위한 성역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생각은 다른 듯 하다. 그는 지난 10일 오후 서울대병원 박 시장 빈소에서 기자에게 “후레자식 같으니”라는 욕설을 했다. 박 시장의 급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으로 보도된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질문을 받은 뒤였다.
이해찬 대표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이 대표는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얘기라고 하나.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당 기자를 노려보다 상기(上記) 욕설을 했다. 해당 기자 개인뿐 아니라 기자 전원에 대한 욕설로 우리는 받아들인다. 우리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당연히 그 질문을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 기자 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
고인과 40년 지기인 이해찬 대표의 심경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는 176석을 거느린 거대 여권의 얼굴이다. 공인이 공식 석상에서,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해도 되는 것인가.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실언은 이 대표가 해놓고 사과는 강훈식 수석대변인에게 시켰다는 점이다. 만 68세인 베테랑 정치인의 대리 사과 지시는 그만큼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는 의미다. 한국기자협회도 13일 “이해찬 대표의 진심어린 사과와 결자해지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피해 여성에 대해선 이 대표가 13일 뒤늦게나마 “피해를 호소한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고 사과를 했다. 이 역시 수석대변인을 통해 전해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어쨌든 사과 릴레이의 첫 삽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제 ‘후레자식’ 모욕에 대해 사과할 차례다. 이 대표도 본인의 이름과 ‘후레자식’ ‘욕설’이 연관 검색어로 뜨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을 터다. 여당의 대표라면 언행에 있어서 최소한의 품위라도 보이길 바란다.
이번 사태가 여권의 추종자들로 인해 기자 전반에 대한 비이성적 매도로 퍼지고 있는 상황에도 깊은 우려를 표한다. 여권 지지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엔 12일 “여기자협회 창녀 아니냐”며 “기자의 본분, 진실은 팽개치고 정치 행위를 여기자협회에서 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국여기자협회가 이날 “피해 호소인과 연대 의지를 밝히며 이번 사안이 미투 운동의 동력을 훼손하는 (중략) 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서다. 여권이 기자 사회에 대한 지지자들의 막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침묵은 또 하나의 방조다.
지난해 9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기자에게 “기레기”라고 대면 욕설을 했던 사례도 있다. 당시 이 의원은 당 대변인, 즉 당의 입이었다. 대변인이 기자에게 ‘기레기’라는 발언을 한 것은 여권의 인식을 무의식 중에 드러냈다. 이 의원은 “상처 받았을 모든 기자 여러분께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엔 당의 대표라는 인물이 기자에게 대놓고 욕설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는 이 대표가 2018년 9월17일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고 했던 발언을 기억한다. 그런 그의 50년 집권 야심에 가장 큰 장애물이 이 대표 본인이 아닌가 되돌이켜볼 때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 결자해지다. 이해찬 대표는 본인의 ‘후레자식’ 욕설에 대해 정식으로, 직접 사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