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에 쓴 세금, 대출받아 반납한 핀란드 장관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정치인이 언론대응 컨설팅 비용을 정부 부처에 청구했다. 컨설팅 내용에는 장관직 수행과 관련이 없는 ‘전당대회’ 시뮬레이션도 들어가 있었다. 비용만 7000만원이 넘는 서비스였고, 그중 일부는 시간 당 100만원에 가까운 ‘원포인트’ 코칭이었다. 언론에서 이 사안을 취재해 알렸다. 핀란드 재무장관이 지난 6월5일 사임한 사연이다.


싼나 마린 총리와 함께 핀란드 내각을 이끌던 여성 장관 5명 가운데 부총리를 겸직하고 있던 까뜨리 꿀무니(Katri Kulmuni). “나는 평범한 라플란드 여성”이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던, 몇 안 되는 핀란드 북부 지역 출신 정치인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경제부장관을 맡은 이력이 있고, 녹색당 대표를 맡고 있던 지난해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무슨 ‘정치 컨설팅’을 받았기에 장관직까지 내려놔야 했을까.


여론에 이 사안을 알린 건 주간지 쑤오멘 꾸바레흐띠(Suomen Kuvalehti, 이하 SK)이다. SK는 지난 6월2일, ‘값비싼 컨설팅’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테끼르(Tekir)라는 컨설팅 회사가 핀란드 고용경제부와 재무부 두 곳에 청구한 부가세 포함 서비스 비용이 5만6000 유로에 이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까뜨리 꿀무니 재무장관 겸 부총리가 이 서비스를 이용해온 사실, 특히 지난해 12월3일 당시 안띠 린네(Antti Rinne) 총리가 자리에서 내려오던 복잡한 정국에서도 값비싼 조언을 받은 일이 드러나면서 그 연관성과 시점에 관한 논란이 일었다.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전에 받은 서비스 비용이 해당 부처에 청구된 점도 의문이었다.


해당 컨설팅은 정치인들이 인터뷰나 방송출연을 앞두고 있을 때 사용하는 서비스였다. 기자 출신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하리 싸우꼬마아(Harri Saukkomaa)가 운영하는 회사 떼끼르는 이같은 서비스를 핀란드 정재계 주요 인사에 제공해왔다. 기자들과의 인터뷰 기술, 답변 태도, 출연 복장, 논쟁 연습 등을 통해서 민감한 사안이나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꿀무니는 재무장관으로서 여러 미디어에 노출되는 일에 부담을 느꼈다면서, 장관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부처에 요청해 컨설팅을 받았다고 언론에 말했다. SK는 취재를 통해 꿀무니가 공영방송 윌레(yle)에 출연한 날이나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 전날, 또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내각 차원에서 대국민 발표가 있던 지난 3월16일 직전에 수백만원씩의 컨설팅 비용이 정부 부처에 청구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논란 속에서 꿀무니 재무장관은 나흘 만에 장관직을 내려놨다.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과 함께, 자신이 받은 서비스 비용 가운데 정부 부처에 청구되었던 비용을 국고에 돌려놓겠다고 밝혔다. 평소 세금의 정확한 사용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던 쪽이었던 만큼 부담이 더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꿀무니는 대출을 받아 며칠 만에 본인이 사용한 세금을 반납했다. 다만 실제로 비용이 이렇게 비쌌는지는 알지 못했다는 꿀무니 측의 주장을 토대로 수사기관에서는 이번 일에 밀접한 주요 관계자를 대상으로 범죄 혐의 유무를 파악하고 있다.


한국 정치인은 이런저런 혜택을 세금으로 받으면서 어떤 경각심을 갖고 있을까? 뉴스타파에서 3년째 추적 중인 국회의원 세금 오남용 실태 가운데 가장 최근작인 ‘엉터리 정책보고서’ 건을 보면 세금 내기가 싫어진다. 여야 할 것 없이 의원실 정책자료집 가운데 다른 보고서를 표현만 몇 군데 바꿔 통째로 표절한 일이 부지기수고, 표지만 갈아 끼운 일도 있었다. 보좌관이 ‘스터디’ 하겠다며 외부 전문가에게 받은 보고서를 작성자 모르게 정책연구용역보고서로 내고 예산을 타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확보한 예산 수백만 원을 그대로 작성자에게 줬을 리가.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어기구, 송옥주, 이학영 의원, 미래통합당 김태흠, 이종배 의원, 무소속 이용호 의원 등. 이렇게 이름을 칠판에 적어놔야 세금 500만원 함부로 쓰는 일이 줄어들까. 세금 돌려놓으세요, 라고 하니 반응은 여러 유형이다. 어떤 의원은 현직이 아니란 이유로 방법이 없다고 ‘먹튀’,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라떼’, 보좌진이 한 일이지 자신은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다는 ‘나몰랑’ 등 잘못을 인정하고 세금 반납한 의원은 극소수다. 국회사무처에서 앞으로 잘 감시하겠다고 하니 믿어도 좋을까. 적어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정치인이라면, 전직이든 현직이든 그 쓰임새는 투명하고 정당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출받아서 돌려놓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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