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오늘도 제게 '원피스'를 묻더군요"

['류호정 의원 원피스' 보도 백태]
이슈 편승, 흥미위주 보도 쏟아져
의상 브랜드·가격 실은 기사까지

“언론은 오늘도 ‘원피스’를 묻습니다. 제 마음은 더 착잡해졌습니다.” 지난 7일 류호정<사진> 정의당 의원이 경기도 안성의 수해 현장을 찾은 뒤 페이스북 계정에 남긴 글의 대목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연합뉴스
지난 4일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등장한 류 의원의 모습은 한국 사회 속 여성 옷차림에 대한 성차별적 시선에 경종을 울렸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원피스 입은 류 의원을 향한 성차별·성희롱 표현이 나왔고 혐오성 발언을 그대로 받아쓴 보도 또한 쏟아졌다. 류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에게 국회는 일터다. 누구나 직장에서 입을 수 있는 원피스였다”며 “원피스에 쏟아진 성희롱적 표현은 평범한 여성들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갑자기 원피스로 언론의 마이크를 받게 됐다. 언론이 여성 정치인을 소비하는 방식이 원피스였나 그런 생각도 좀 들었다”고 꼬집었다.


언론사들의 류호정 보도는 트래픽에 목매는 보도 행태와 여성 정치인을 다루는 방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류 의원 원피스와 관련해 기사 수와 주목도는 압도적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류호정 원피스’를 검색한 결과, 류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원한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간 보도된 기사 수는 313개다. 류 의원의 원피스 관련 보도가 본격적으로 나온 지난 5일과 6일엔 포털 사이트 네이버 랭킹뉴스 정치 섹션 1~30위에서 류 의원 관련 기사가 순위 대부분을 차지했고, 지난 6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 ‘류호정 원피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 사안에 대한 맥락과 의미를 짚어보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슈에 편승해 사안을 단순 흥미 위주로 소비한 보도양상도 존재했다. 지난 5일 중앙일보는 <[화보] 티셔츠·청바지·정장… 류호정 의원 즐겼던 옷은?> 기사에서 화보 형식으로 류 의원이 그동안 국회에 입은 옷차림과 의원이 아닌 시절의 모습의 사진들을 모아 보도했다.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나 류 의원의 원피스에만 집중한 보도들도 있었다. 국민일보, 노컷뉴스, 매일경제, 서울경제, 조선일보, 한국경제 등은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의 브랜드, 가격 등을 자세히 알려주는 기사를 보도했고 이 중 일부 언론은 류 의원에게 ‘완판녀’라는 호칭까지 달기도 했다. 비슷한 보도양상으로 언론사들은 지난달 최동석 KBS 아나운서, 박지윤 방송인 부부가 트럭과 정면충돌했음에도 경상만 입었다는 사고 소식을 다루며 부부의 사고 당시 자동차 브랜드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지난 6월 조선일보는 <법원서 1시간의 점심시간, 이재용은 설렁탕 대신...> 기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 실질 심사 때 먹은 도시락과 편의점 커피 제품을 자세히 알리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안은 친여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이 류 의원을 두고 한 여성 혐오적 게시물들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비판하면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소모적 논쟁을 ‘원피스 논란’으로 명명해 결국 사안이 과도하게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국민일보, 매일경제, 아시아경제, 조선일보, 한국경제, 헤럴드경제 등은 기사 제목에 여성 혐오, 성희롱적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등 클릭 수에만 연연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