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방송 노조가 이재학 PD 사망에 책임이 있다.”
CJB청주방송 대주주인 이두영 두진건설 회장의 발언이다. 이재학 PD 사망 사건에 대해 회사가 책임을 인정하고 합의한 지 한 달도 안 돼 나온 말이다. 이 회장은 언론을 통해 “노조도, 그 누구도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지난 6월 발표된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배치되는 주장이다.
진상조사위는 이 PD의 사망 원인이 회사의 부당해고와 회사 측의 소송 방해 행위 때문이라고 밝혔다. 청주방송이 이 PD가 사실상 정직원처럼 일했다는 사실을 은폐했고, 이 PD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도운 직원을 회유·협박했다고 결론 내렸다. 대체 어느 부분에 노조의 책임이 있단 말인가. 이 회장의 발언은 분명 자기반성보다 책임 전가에 가깝다.
또 다른 문제는 이 회장에게 일련의 사태로 불거진 갈등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앞서 이 회장은 사태 해결을 위해 경영이사를 도입하겠다며 청주방송 전 경영국 간부 A씨를 선임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A씨는 1998년 청주방송 구조조정 사태 당시 노조를 탄압한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언론노조 청주방송지부는 성명을 통해 “다시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선전포고’로 들린다”며 반발했다.
과거 노조 탄압 경력이 있는 인사를 이 시기에 굳이 앉히겠다는 건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 회장이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으로서 인사권을 갖고 있다 해도 노조와의 협력은 중요한 가치다.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언론사 경영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PD는 2004년부터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다 2018년 4월 동료 프리랜서의 인건비 인상을 요구한 직후 해고됐다. 이 PD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으로 청주방송과 법적으로 다투다 지난 1월 패소했고, 2월4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PD의 죽음은 방송계에 큰 숙제를 남겼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청주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4월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발표한 방송계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821명 중 52.4%가 임금 체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 외 수당(95.4%)과 퇴직금(91.7%), 4대 보험(91.5%)을 받지 못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모두 90%를 넘었다. ‘최근 1년 내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도 66.5%였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규정이 법제화된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는 응답도 64.4%나 됐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가 불거지면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던 방송사들이 정작 자신들의 비정규직 처우 개선엔 소극적이다. 지난달 청주방송 사태가 타결됐을 때 언론노조는 “누군가의 삶을 갈아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내부로부터 터져 나온 자성의 목소리가 방송사들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지금은 갈등에 불을 지필 때가 아니다. 이두영 회장은 2000년부터 20년 동안 청주방송 대표이사였고 현재 이사회 의장이다. 이 회장은 비극적 사태의 책임자로서, 또 합의의 당사자로서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책임 운운하며 변화의 발목을 잡기엔 이 문제는 너무 심각하고,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