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임금과 시진핑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먼 옛날 요임금이 중국을 다스릴 때 황허(黃河)가 자주 범람해 백성들의 피해가 컸다. 요임금은 곤에게 치수를 명했지만 9년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다. 요임금의 뒤를 이은 순임금은 곤에게 책임을 물어 죽이고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임무를 대신 맡겼다. 그는 십수 년간 노력한 끝에 수해 방지에 성공했다. 사회는 안정되고 번영을 누렸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우치수(大禹治水·우임금이 물을 다스리다)’ 고사다. 농경사회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재민을 구제하는 건 위정자의 당연한 본분이었다. 자연재해를 인재로 치부하는 게 동양적 정서다. 가뭄이 들면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고, 홍수가 나면 사재를 털어 구휼 활동을 벌인 이유다.


최근 극심한 물난리를 겪고 있는 중국에서 대우치수 고사가 다시 등장했다.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안후이성 시찰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을 통해서다. 그는 논밭이 침수돼 울상인 농민들을 모아 놓고 “우공이 산을 옮기고(愚公移山), 우임금이 물을 다스렸듯 중화민족은 자연재해와 수천 년을 싸우면서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싸워 나가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했다. 시 주석이 논두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가는 내내 수해 복구 작업에 여념이 없던 농민들은 일손을 놓고 경청해야 했다.


지난 6월 초부터 두 달 넘게 이어진 폭우와 홍수로 중국 전역이 몸살을 앓는 동안 시 주석이 재난 지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두문불출하다 발병 3개월이 지나서야 진앙지인 후베이성 우한을 방문했던 몸 사리기 행보의 재연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중 갈등 격화와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등 외부 이슈 대응에 천착하느라 정작 민생은 나 몰라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 주석이 몸을 움직이자 리커창 총리도 비로소 수해 현장을 찾아 민심 다독이기에 나섰다. 절대 권력보다 앞서 걸을 수 없는 2인자의 애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리 총리는 진흙이 잔뜩 묻은 고무 장화를 신고 홍수로 물에 잠긴 충칭의 곳곳을 누볐다. 총리를 만난 시민들은 “이렇게 큰 홍수는 본 적이 없다”며 “외지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까지 돌아와 수해를 복구하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총리는 “모두가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한다”며 “당과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세계 어느 곳의 재해 지역에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중국중앙방송(CCTV) 등 3대 관영 매체는 이 훈훈한 장면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멀끔한 구두 차림의 시 주석과 대비되는 걸 저어해서다.


이번 홍수로 6300만명이 넘는 이재민과 우리 돈으로 30조원이 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4150명이 사망하고 현재 기준으로 43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 1998년 대홍수와 비견되지만 중국 내 어느 매체도 ‘대홍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1998년 홍수 때 장쩌민 전 주석은 방일 일정도 뒤로 미루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2007년 창장(長江·양쯔강) 유역에서 홍수가 나자 후진타오 전 주석도 장화를 신고 수해 현장에 나타나 수해 복구를 진두지휘했다. 비난 여론을 막고 민심을 달래려는 위정자의 본능적 행동이었다. 집권 8년차에 접어든 시 주석은 이 같은 본능적 감각이 퇴화해 가는 모습이다. 안후이성에서 국가 최고 지도자와 대면한 한 농민은 “홍수가 와도 전기·수도가 끊기지 않고 생필품까지 배달됐다”며 “이제 물이 빠지면 서둘러 파종하면 되니 총서기는 안심하시라”고 용비어천가를 읊었다. 시 주석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우임금은 치수에 힘쓰는 동안 먹고 입는 것을 소홀히 하고 보잘 것 없는 곳에 기거하며 귀신까지 정성껏 섬기며 그 힘을 빌리려 했다. 자금성만큼 넓고 호화로운 중난하이(中南海)에 거하며 장기 집권을 꿈꾸는 시 주석은 대우치수의 전말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