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이전의 취재 관행 벗어나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2만명을 넘었다. 언론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취재 과정에서 취재원을 자가격리 대상으로 만든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엔 모 정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취재 기자의 확진 판정으로 지도부 전원이 자가 격리되고 국회가 ‘셧다운’ 되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야 피해를 입은 게 먼저라 하겠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보자면 존재 자체만으로 민폐인 것이다.


그리하여 취재 방식도 덩달아 바뀌었다. 재택근무나 화상 회의가 도입됐다. 온라인으로 부처 정책 브리핑을 시청하고, 집에서 전화로 취재된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송고됐다. 데스크와의 소통도 원격으로 가능하다는 게 확인됐다. 기존 문법대로라면 용인되기 힘든 변화였다. 다만 불가피했을 뿐이고, 잠시 눈을 감아 모른 척 했을 뿐이다. 변화는 전적으로 자발적이지 않았다.


저널리즘 본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받아쓰기 보도가 그것이다. 정책의 배경을 듣고 문제점을 찾아 대안을 취재하는 일이 온라인 브리핑을 듣고 전화로 묻는다고 뚝딱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취재원과의 식사 약속은 대부분 취소되고, 이른바 ‘마와리’도 금기시되는 분위기에서 한계는 분명하다. 당장이야 신뢰관계를 쌓아왔던 취재원들에게 전화만으로 내밀한 뒷사정까지도 끄집어낼 순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일은 아니다. 신입기자 선발을 목전에 둔 언론사들은 수습 교육에 대한 고민도 불가피하다. 이런 국면이 장기화한다면 전화 취재나 온라인 커뮤니티 마와리가 전부일테니까.


대안을 고민하다 자성으로 이어진다. 밥·술로 취재하는 문화는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정보를 제공하며 밥까지 사야 하는 상황을 취재원들에게 강요했던 건 아니었나 되돌아본다. 취재원이 전하는 뒷얘기가 정책 취지나 내부고발인지 확신할 수도 없다. 유리한 내용만 흘리는 파편적 정보를 나는 걸러낼 수 있을까. 으레 ‘단독’ 타이틀로 치하됐을 기사들이 갑자기 ‘검언유착’이나 ‘권언유착’으로 비난받는 것을 정파적 의도만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내가 쓰는 기사는 사실 전달인가 받아쓰기인가, 고발인가 유착인가. 취재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감시견의 순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선진화된 취재 방식이 있기는 한 걸까.


내부 고발자가 신상 노출이나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을 고민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제보할 수 있는 위키리크스 같은 제보 시스템 활성화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친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정부의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정보 공개 환경과 문화, 제도적 근거도 필요해 보인다. 정부 기관의 부처별 브라운백 미팅과 같은 공식적인 설명회 자리를 마련한다면, 기자들에게 개인적인 점심·저녁 약속을 잡지 않더라도 최소한 정책의 취지나 정확한 내용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코로나19와 같은 제한된 환경에서도 다양한 대안적 취재 방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아가 불가피하다 눈감아왔던 취재 관행들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무례하진 않았는지 자성이 필요하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지금껏 유지돼온 재래식 업무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진 않은지 공부도 절실하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강요됐거나 포기했던 가치들도 되찾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의 일부라도 실제 취재 환경에 반영되길 희망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는 어쩌면 우리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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