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으면 나라가 변질된다"

[글로벌 리포트 | 인도네시아]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9월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가연을 잇는 귀한 달이다. 1920년 9월20일 인도네시아에 한인이 첫발을 디뎠고, 1969년 9월10일 대표 한상기업 코린도그룹이 창업했고, 1973년 9월18일 양국이 수교했다. 이주, 경제협력, 외교 역사가 모두 9월 어느 날 뿌리내린 셈이다.


특히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 100주년이다. 그전에도 한인들이 인도네시아 여러 섬에 들렀다는 설들이 있으나 ‘정착’이라는 이주의 뜻에 충실한 기록을 쫓다 보면 1920년 9월20일에 닿는다. 그날 네덜란드령 동인도 바타비야(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한 한인은 장윤원(1883~1947) 선생이다.


그는 해외에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사재를 털어 자금을 지원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일하던 은행 돈을 빼돌려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낸 사실이 발각돼 일본 경찰에 쫓긴다. 부인 백씨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그 해 4월 만주로 탈출, 3개월 후 중국 베이징으로 피신했다. “중국보다 안전하지 않겠느냐”는 지인의 조언과 도움으로 혈혈단신 적도 땅을 밟게 됐다. 네덜란드 총독부의 일본어 수석통역관으로 일하며 1921년 화교 출신 여성과 재혼해 2남3녀를 뒀다.


1942년 3월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은 조선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망명한 장윤원 선생을 붙잡아 고문하고 투옥했다. 1945년 8월 종전 후 해방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고문후유증을 이기지 못한 장윤원 선생은 1947년 11월23일 자카르타 자택에서 통한의 27년 망명생활을 죽음으로 마쳤다. 특파원 부임 전 존재조차 몰랐던 그의 이름을 부르면 수많은 이름을 더불어 호명해야 한다. 이역만리에서 망국의 한을 떠안은 일제 강점기 적도의 한인들이다.


중부자바의 조선인 포로감시원 26명은 1944년 12월29일 ‘아세아의 강도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되라’는 강령 아래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 일제 패망을 예상하고 연합군 포로 수송선 탈취 계획을 세웠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중 민영학, 손양섭, 노병한 의사는 갑작스런 전속 명령에 불만을 품고 1945년 1월4~6일 일본군 십여 명을 죽인 뒤 잇따라 자결했다. 이른바 암바라와 의거다.


이억관 김현재 임헌근 이상문 조규홍 문학선 백문기 박창원 오은석 신경철 지주성 박승욱 변봉혁 한맹순 금인석 송병기 김춘식 김민수 김규환 김선기 신재관 김인규 안승갑. 나머지 고려독립청년당원의 이름이다.


암바라와엔 아직 일본군 위안소가 남아있다. 조선인 처녀 13명이 고초를 겪었던 현장이 공중화장실과 쓰레기더미로 변한 걸 지난해 직접 보고 망연자실했다. 종전 후 6~7명이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름이 남은 사람은 2004년 숨질 때까지 육성 증언을 남긴 정서운 할머니뿐이다. “처음에 인제 저녁에 장교 한 놈 오더라고. 술을 잔뜩 처먹고 오는 기라. 벌벌 떨릴 거 아이가. (중략) 그래 갖고 이제 강간을 당한 기지. 막 발악을 하고 그러니까 아편을 찔러 넣는 기라. 그만 중독이 돼버린 거라.”


그리고 양칠성이 있다. ‘일본의 똥개’라 불릴 만큼 일제에 충직한 포로감시원, 일제 패망 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투신해 처형당한 ‘독립 영웅’이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파란만장한 삶이라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조심스럽다.


부임 이후 반년 넘게 이들의 이름과 발자취를 쫓았다. 컴퓨터에 저장된 4만7872자, 200자 원고지 240매 분량의 취재일지와 관련 도서 7권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호응은 굵고 짧았다. 장윤원 선생 비석과 그 아들을 기리는 석판에 일본어 음독으로 새겨진 이름을 바꾸지 못했고, 암바라와 의거 현장과 위안소에 푯돌을 세우는 일도 미뤄졌다. 인도네시아에서 독립 영웅과 역사 위인에게만 허락되는 도로 이름을 양칠성이 누리는 영예도 지지부진하다.


국재만, 정수호… 아직 불러야 할 이름이 많다. 그나마 현지 한인 사회가 9월 발간을 목표로 한인 100주년사를 집필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갑다. 오래 전 이역만리 한인들의 이름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국부(國父)이자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말했다. “역사를 잊으면 나라가 변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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