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묻는다, 팩트입니까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팩트입니까. 언론에 묻고 싶다. 편견이 사실을 훼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내 편인지, 네 편인지 가르는 진영 논리가 언론을 선전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진보언론을 자처한 언론은 ‘어용 언론’ 소리를 듣고 있고, 보수언론은 정권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팩트보다 정치적 주장에 경도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 심화되고 있다. 그 밑바닥엔 팬덤 정치가 있다. 팬덤을 잘 활용하면 시청률이 치솟고, 배반하면 독자 이탈이 쇄도한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순간 매서운 보복이 뒤따른다.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그르다는 흑백 논리에 사로잡혀 외눈박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리고 언론에 묻는다. 팩트입니까.


최근 조선일보가 ‘조국 딸 세브란스병원 인턴 지원’ 의혹을 보도했다가 하루 만에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사자인 1차 취재원이 아닌, 2차 취재원의 증언만을 토대로 작성한 경위를 밝혔다. 사실 확인이 부실했다고 인정했다. ‘오직, 팩트’를 강조한 신문답지 않은 성급한 보도였다. 의문은 남는다. 검증을 소홀히 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평소 충실했던 반론권 보장이 왜 조국 보도에선 간과됐는지 궁금하다.


그에 앞서 KBS도 검언유착 의혹 보도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동재와 한동훈 공모 의혹을 보도한 바로 다음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사과 방송을 했다. 취재 내용을 검증할 게이트키핑은 그날 먹통이 됐다. 통합뉴스룸 국장은 시청자위원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확증편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실제로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건 맞다는 확증편향이 생기면서 기사에 단정적 표현이 들어갔습니다.” 취재 부실에 대해 조선일보보다 더 진솔한 고백이다. 그에 앞서 한겨레도 윤석열 보도 부실에 대한 오보를 사과했다. 취재원이 한 말의 내용 확인이 불충분했다고 인정했다.


세 언론의 오보엔 공통점이 있다. 의혹 보도의 당사자가 진영을 가르는 인물이다. 조국, 한동훈, 윤석열 모두 극명한 지지와 반대세력을 안고 있다. 공작 정치가 곳곳에 도사린 현실에서 부실한 의혹을 누군가 던졌을 때 덥석 물기 좋은 먹잇감이다. 사실 확인이 느슨해도 밀고 간다. 평소 같으면 걸러졌을 내용이 쉽게 검증의 관문을 통과한다. 개연성이 사실보다 앞선다.


비슷한 점은 또 있다. 반론을 받으면 쉽게 오보로 이어지지 않을 텐데 시간에 쫓기듯 원칙이 무시된다. 이상하게도 모든 정황이 취재 내용을 뒷받침한다. 덫에 걸리는 순간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싶은지에 더 매달린다. 결국 스스로 가진 의심에 부실 취재가 더해져 확증편향에 빠진다.


언론 스스로 ‘팬덤 언론’을 자처하며 균형을 잃는 모습도 보도 편향을 부르는 원인 중의 하나다. 문 대통령 지지층은 대통령 말대로 ‘양념’이 아니다. 어느 정권보다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언론 보도를 위축시킨다. 정권에 이로운 보도인지 아닌지를 두고 건전한 비판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팬덤에 휩쓸려 눈치 보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용병으로 뛰는 언론은 보기에 딱하다. ‘어용 언론’ 딱지가 붙으며 조롱을 당한다. 편가르기가 팽배한 때일수록 정론지라면 시시비비를 가려 사실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치명적 오보를 막는 최선책이다.


언론의 주관적 충동은 객관적 도구로 제어해야 한다. 그 도구는 팩트다. 팩트가 그물망처럼 촘촘해 진실이 빠져나갈 수 없어야 한다. 객관과 균형, 공정은 그물을 짜는 실이다. 그 실이 짱짱할수록 주관과 편향, 불공정이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다. 언론에 묻는다. 오늘 보도는 팩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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