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베, 포스트 이와타

[글로벌 리포트 | 일본]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NHK 문자속보-아베 총리, 사임 의향 굳혀>. ‘딩동!’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제대로 본 게 맞나? 두 눈 씻고 다시 읽었다. 맞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리며 부리나케 사무실로 뛰어갔다. 주변 사람도 순식간에 물안개처럼 흩어졌다. 8월28일 오후 2시7분의 일이었다.


아베 총리 회견은 오후 5시였다. 애초 건강에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코로나19 대응책을 내놓을 거란 예측이 많았다. 도쿄신문 조간 제목은 <총리, 오늘 저녁에 직무 연장 의욕 표명>이었다. 오전에 확인한 내각 각료들과 자민당 지도부 발언도 그랬다. 반(反) 아베이건, 친(親) 아베이건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혹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지금 들어온 정보입니다.”


NHK 속보 방송이 열렸다. 낯익은 기자가 앵커와 대담했다. 이와타 아키코(岩田明子) NHK 논설위원 및 정치부 기자. 그는 아베 총리에 ‘빙의된 듯’ 사임의 뜻을 굳힌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일본 최장수 총리의 퇴장을 ‘1보’로 알린 기자. ‘예상대로’였고, ‘이번에도’였다.


돌이켜보면 아베 집권기 7년 8개월 동안 굵직한 특종은 늘 그의 차지였다. 그때도 그랬다. 2016년 5월10일 오후 8시51분. NHK 수도권 뉴스를 끊고, <오바마, 이달 27일 히로시마 방문, 현직 미 대통령 중 최초>라는 속보 방송이 열렸다. 워싱턴 특파원 연결 뒤 스튜디오에 이와타가 자리를 잡고, 곧바로 아베 총리의 긴급 회견이 시작됐다. 다른 관저 출입기자들을 완전히 따돌린 ‘NHK의 독무대’였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한 의원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도쿄 나카타초(永田町·일본 정계의 중심)에선 산케이가 쓰면 ‘△’, 요미우리가 쓰면 ‘○’, NHK가 쓰면 ‘◎’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같은 친정권 성향 매체라 하더라도 NHK의 정확도를 가장 후하게 쳐준다는 뜻이다. 이런 평가의 상당 지분은 이와타로부터 비롯된다.


일본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는 가족처럼 가깝다. 아침 식사부터 저녁 일정이 끝날 때까지 휴일도 없이 따라붙는, 이른바 ‘반기샤’(番記者)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한 번 관계를 맺으면 끝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 ‘3김 시대’ 정치부 기자들의 취재 방식은 일본 ‘반기샤 시스템’의 복사판이었다.


이와타는 많은 ‘아베 반기샤’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2002년 아베가 관방부장관일 때부터 담당해 인연이 깊다. ‘아베 취재에 가장 정통한 기자’, ‘총리와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기자’, ‘(총리)사저 출입이 허락된 기자’라는 등 우리로선 상상하기 힘든 평가를 받는다. 아베의 개각 논의에 참여했다는 설까지 있다.


이쯤 되니 그가 다른 기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던 건 당연했다. 그의 특종이 거듭될수록 경쟁 기자들은 궁해졌다. 그래도 한 번쯤 따져볼 일이다. 그의 기사 대부분은 이른바 ‘시간차 특종’이었다. 어차피 곧 알려질 내용으로 사건 맥락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득권의 탐욕과 부조리를 폭로하는 일과도 거리가 멀었다. 한국기자협회는 소수 정보원이 흘려준 ‘시간차 특종’에는 ‘보도상’을 주지 않는다. 사실의 단순 전달, 간발의 차를 노린 보도 시점보다는 ‘문제 의식’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이와타는 오히려 ‘문제 기자’ 쪽에 가깝다. 그는 아베가 총리가 된 직후인 2013년 7월 해설위원으로 승진했지만, 정치부 기자를 겸임하며 총리관저의 의중을 전달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비평과 비판이 빠진 ‘어용 해설’이란 곱지 않은 시각이다. 어쨌든 총리는 바뀌었고, 이와타의 ‘끈’은 떨어졌다.


일본 내 많은 사람은 이제 ‘포스트 아베’ 시대, 누가 ‘포스트 이와타’ 자리에 오를지에 관심을 둔다. 벌써부터 스가 신임 총리의 옛 개인 비서와 결혼한 TV아사히 정치부 기자(총리관저 담당) 등이 ‘스가 패밀리’로 거론되기까지 한다. 새 정권에 간택돼 정보를 넘겨받을 경쟁 언론사, 또 다른 이와타가 부럽겠지만, 부러우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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