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사에도 적용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등에 대해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우는 이 법안을 놓고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기자협회보는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놓고 나오는 다양한 여론을 전달하기 위해 전문가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 9월 법무부가 발표한 상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사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6월 정청래 의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포함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면서 언론계는 한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내고 있다. 기자협회, 편집인협회, 신문협회 등 언론 3단체는 법무부의 입법예고에 대해 “악의적 가짜뉴스라는 모호한 잣대로 언론에 징벌적 처벌을 가하겠다는 것은 민주정부의 발상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판단주체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 비판적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한 뒤 언론탄압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이들 3단체의 주장은 언론의 감시기능과 국민의 알 권리를 위축시키려는 과잉규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을 언론계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의 골이 깊어진 것은 오래된 일이다. 권력의 폭압에 맞서 언론자유와 언론민주화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던 시민들도 대부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 지난 5월 미디어오늘-리서치뷰 정기 여론조사에선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응답이 81%로 나타났다. 그러면 시민들은 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찬성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시민들은 언론의 허위·왜곡보도와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이미 언론계가 자정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본다. 또한 언론보도로 인한 인격권 침해와 관련해서도 지금의 법체계에서는 제대로 된 구제와 예방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 언론이 정파적 보도로 점점 객관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조회 수 경쟁과 낚시성 기사로 언론시장이 혼탁한 상황에서 언론은 재난보도, 사회적 이슈가 되는 범죄보도조차 시민의 안전과 피해 예방보다 선정적·상업적 보도를 내보내 보도피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언론중재법이나 민법의 범위에서 피해구제를 통해 언론의 책임을 묻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오보나 왜곡보도 등 언론의 행태는 바뀌지 않아 오히려 현행법이 언론의 책임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아마도 언론계 내부에서도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에 대해 공감하며 언론인으로서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을 포함한 언론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에 대해 언론의 ‘자유’만큼 중요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우리사회가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불법행위를 한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그 ‘악의’나 ‘고의’를 증명하는 것이 피해자 입증책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언론의 보도 피해 예방 및 구제의 큰 틀을 형사법적에서 민사법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논의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법무부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은 ‘기업의 부담’을 주장하며 시민의 생명권, 안전권에 대한 피해구제를 외면한 채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은 기업의 경제활동 우선이라는 프레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에서 벗어나 시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