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4일)은 가수이자 배우였던 설리(고 최진리씨)의 1주기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을 듣고 “영광스러운 날이네요. 모든 여성들에게 선택권을”이라고 쓴 그가, 살아있었다면 형법상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에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 싶어 마음이 더 무겁다.
설리의 죽음 이후, 내가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여성 연예인에게 쏟아지는 무례한 비난과 성희롱들을 비판해오면서도, 기꺼이 그의 편이 된 적이 없었다. 내심 그를 ‘논란거리’로 만드는 언론, 그리고 악플러들을 ‘어쩔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 포털 연예 뉴스란의 댓글이 사라졌다. 또 ‘다음’에선 ‘실시간 검색어’가, ‘네이버’에선 ‘인물 연관 검색어’가 사라졌다. 소녀시대 출신의 배우 수영은 이에 대해 “멋진 파도처럼 살다가 방파제가 되어준 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론은 그가 남긴 방파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설리와 구하라씨의 죽음 이후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예매체뿐만 아니라 주요 일간지조차 조회수를 위해 설리를 모욕하는 기사를 써왔다는 사실이 다시금 알려졌고, 동시에 언론 내부에서 성찰의 목소리도 종종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난달 MBC의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방영 이후에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느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설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구조적인 문제를 면밀하게 짚지 못했다. 더불어 설리의 전 남자친구를 비중 있게 언급한 부분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다시 보기’ 서비스가 중단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살아생전 설리를 ‘가십’으로만 다루던 언론사들이 ‘다큐멘터리 요약 기사’와 그의 전 남자친구에 관한 기사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방송 내용에는 잘못된 언론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는데, 이것이 남의 이야기인양 딴청을 피우는 느낌이었다.
염치가 없어도 이렇게나 없을 수가 있을까. 그들은 어느새 잊어 버렸다. 설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것 중에 하나가 언론사 기사라는 사실을. 온라인 팀을 만들고, 매일매일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게시물 하나하나 기사로 만들어, 설리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는가. 죽어서까지 그가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설리는 ‘젊은 여성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맞서면서, 사회의 통념을 깨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들은 온당하게 그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 채, ‘이상하다’, ‘괴이하다’라고만 여겨졌는데, 이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적어도 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면, 그가 남긴 방파제만큼은 부디 유지해줬으면 한다. 두둔하거나 지켜달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여성과 남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달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각종 혐오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더 이상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내몰지 않기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