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에 10가구가 산다. 그중 7가구는 이미 집이 있고 나머지 3가구, A·B·C는 전세나 월세 등 세입자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집을 사기 어려워졌다. 그럼 우리 언론은 ‘매매를 포기하면서 전세수요가 늘어 이번엔 전셋값 급등’이라고 보도한다. 그런데 A·B·C가 집을 사는 것을 포기한다고, 추가로 늘어나는 전세수요가 있을까? A·B·C는 이미 전셋집에 살고 있는데…. 전·월세 시장은 투기수요나 가수요가 없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을 걱정한 A·B·C가 전셋집을 2~3개씩 추가로 계약할까?
물론 1인가구와 신혼부부 등 신규 가구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매매보다 전세를 선택할 경우, 전세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실제 서울의 경우 인구는 줄어드는데 1인가구가 워낙 늘다보니 해마다 가구 수는 3~6만 가구 정도 늘어난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 수도 해마다 2만~4만5000 가구 정도 순증한다. 그리고 대다수 1인가구는 연립의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1인가구를 시작하지, 아파트 전세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다시말해 전세수요를 높이지 못한다.
서울의 신규 아파트 공급은 2012년과 2013년 2~3만호 정도였다. 2018년과 2019년에는 4만3000 가구와 4만5000 가구가 각각 입주했다. 공급은 더 늘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서울의 전세수요를 높이는 것일까.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낮은 이자율과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우리 언론의 초치기 ‘전셋값 급등’ 기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전셋값은 2019년을 ‘100’으로 봤을 때 10년 전엔 ‘61’이었다(KB 부동산통계). 쉽게 말해 10년 전 6억원이였던 전셋값이 지금 10억원이 됐다. 그런데 10년 전 전세대출의 평균 이자율은 4.5%였다. 지금(2020년 1분기) 전세대출 평균 이자율은 2.9%다. 그때 전세 6억원의 이자부담은 2700만원인데 지금 전세 10억원의 이자부담은 2900만원이다. 이자부담은 10년 동안 7.4% 올랐을 뿐이다(2020년까지 10년 동안 소비자물가는 15.5% 올랐다).
세상에 떠도는 검증 안된 주장이 언론의 가설로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게 건물주들의 월세 인상이다.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 집주인들이 이에 맞서 월세를 올린다’고 한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건물주들이 원하면 언제든 월세를 올릴 수 있다’는 가설도 맞아야 한다. 이 주장은 10여년 전 종부세가 처음 부과됐을 때도 등장했다. 종부세를 내기 위해 강남 집주인들이 앞다퉈 전·월세를 올린다고 했다. 진짜 궁금하다. 언제부터 시장경제는 ‘화가 나면’ 가격을 올릴 수 있게 됐나? 그럼 집주인들은 지금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월세를 선의로 올리지 않고 있는 것인가?
몇몇이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그 주장이 팩트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몇가지 팩트를 잘 오려붙여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선한 경제학자 맬서스(Malthus)가 ‘인구론’을 발표한 1798년, 영국의 지배계층은 공포에 빠졌고, 결국 서민들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복지 축소를 결정했다. 수많은 엉터리 가설은 엉터리 주장을 낳는다.
지난해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 제한조치로, 우리 50년 산업화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거라고 주장했던 그 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의심할만한 논거들이 언젠가부터 당연한 명제가 돼 기사 위에 올라온다. 그렇게 의심해야 하는 우리의 직업은 점점 단정하는 직업으로 변한다. 진실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슬며시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