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 언론은 이건희 회장의 일생을 짚으며 명과 암을 논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를 균형있게 다루려는 노력도 있지만, 오직 빛에만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평소의 논조에 따르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끝내기엔 삼성과 언론의 관계가 복잡하다.
최근 삼성과 언론의 관계가 주목받은 것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폭로 사례다. 삼성전자 대관 담당 임원이 인터넷 언론사 기자출입증을 갖고 국회를 자유롭게 출입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해당 언론사의 존재를 전혀 몰랐고 광고 등을 명목으로 한 지원도 이뤄진 바 없다고 해명했다. 업무 용이성과 광고 수익을 노린 개인의 일탈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문을 남긴다. 첫째는 보수정당 당직자 출신인 삼성전자 상무가 단지 개인의 편의를 목적으로 인터넷 언론사까지 활용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이 인터넷 언론사에 합류한 시점은 삼성 대외협력팀 상무로 채용된 이후이다. 최근 1년간 국회의원 회관에 드나든 건수만 100건이 넘는데, 특히 국정감사 기간에 집중됐다. 결국 인터넷 언론사는 삼성전자 관련 업무에 동원된 것이란 점에서 삼성전자의 해명은 ‘꼬리 자르기’가 아닌지 의심된다.
두 번째 의문은 좀 더 근본적인데, 도대체 우리에게 인터넷 언론사란 무엇이냐는 거다. 적은 자본으로 소수 인원만 갖고도 쉽게 설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언론사는 최근 공론장 질서를 혼탁하게 만든 주범처럼 평가되는 것 같다. 오직 클릭수만 의식한 기사를 기계적으로 쏟아내며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이 아닌 ‘사업적 수익’에 초점을 맞춘 인터넷 언론사가 하늘의 별만큼 많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껍데기 뿐인 인터넷 언론사들에 기사를 공급하는, 말 그대로의 ‘뉴스공장’이 존재한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이쯤되면 인터넷 언론사를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
정확히 이런 논리로 인터넷 언론사에 대한 규제 강화를 시도한 게 박근혜 정권이다. 이때 제기된 반대 논리는 기성 언론이 주류화된 데다 정치와 자본에 종속된 상황에서 인터넷 언론사나 ‘뉴 미디어’가 논조의 다양성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광경은 “검증된 주류 언론이냐, 대안 언론이라는 사기꾼이냐” 혹은 “눈치 보지 않는 대안 언론이냐, 오염된 주류 언론이냐”란 단순한 구도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주류 언론이 자본에 포섭돼있다는 걸 드러낸 것 역시 삼성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광고로 주류 언론까지 쥐락펴락 하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장충기 사장에게 주류 언론 관계자들이 보낸 문자들이 화제에 오른 일도 있었다.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다는 둥, 받기만 해서 송구하다는 둥, 어떻게 하면 면세점 사업을 도울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둥의 내용은 지금 봐도 낯이 뜨겁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언론의 형태에 있는 게 아니라 언론이 얼마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우리 사회가 그러한 상태를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에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은 이 문제에 있어선 장애물이었다는 게 분명하다. 앞으로의 삼성은 달라야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란 점에서 언론의 자성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