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세계 3위, 누적 사망자 세계 2위(2020년 10월 말 현재)인 브라질에서 ‘백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상파울루 주지사를 비롯한 지방정부 수장들이 백신 확보 방법과 접종 방식을 두고 기싸움을 계속하면서 코로나19 방역에 혼선을 더하고 있다. 문제는 ‘백신 전쟁’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우선하는 공공보건의 관점이 아니라 정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라질에서는 상파울루주 정부와 중국 시노백(Sinovac·科興中維) 생물유한공사가 추진하는 백신 개발 계획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파울루주 정부는 올해 안에 중국 백신 4600만개를 확보하고 내년 초부터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기술이전을 받아 백신을 대량생산해 다른 지역에도 공급하자며 보건부에 투자를 촉구했고, 이에 보건부 장관이 중국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나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반대로 하루 만에 취소했다.
이후 브라질 언론에서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중국 백신 구매에 동의했으면서도 지지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포퓰리즘 정치 행위를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로 지지자들은 보건부 장관이 상파울루 주지사의 대권 도전을 돕고 있다며 해임을 촉구하는 의견을 소셜미디어(SNS)에 잇따라 올렸다. 중국 백신 구매에 찬성 의견을 밝힌 부통령도 욕을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따르는 극우 성향 지지자들은 코로나19를 여전히 ‘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며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상파울루 주지사도 나름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겉으로는 “지금은 백신을 접종할 때지 대선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했으나 그 역시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는 마찬가지다. 백신 확보가 급한 다른 지역 주지사들과 함께 연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서도 그의 ‘백신 정치’ 행태가 엿보인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된 백신이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접종 의무화 문제를 두고도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상파울루 주지사가 부딪히고 있다. 상파울루 주지사는 중국 백신이 보건 당국의 승인을 받으면 모든 주민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상파울루주 전체 주민 4500만명 모두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백신을 접종하는 주체는 보건부가 돼야 한다면서 모두가 의무적으로 백신을 맞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의사인 것처럼 행동하는 주지사가 있다”고 말해 사실상 상파울루 주지사를 정조준 했다.
두 사람의 공방에 연방대법원과 의회까지 끼어들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연방대법원장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 것인지 문제를 대법관 회의에서 다룰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하원의장은 이 문제가 대법원으로 가기 전에 행정부와 입법부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대법원장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브라질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를 무시하는 행보를 계속했고, 현역 군 장성을 장관으로 맞은 보건부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말라리아약을 치료제로 사용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면서 의료계의 우려를 샀다. 여기에 백신을 둘러싼 논란까지 확산하자 보건 전문가들이 “또다시 실수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정치권에 신중한 자세를 당부하고 있는 게 요즘 브라질의 모습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사태에서 비롯된 ‘백신 전쟁’은 2022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미세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극우와 좌파의 팽팽한 대립 속에 대선 판세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중도 진영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실수를 거듭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조금씩 등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