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가 또 화났다

[글로벌 리포트 | 일본]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10월27일 아침, 일본 공영방송 NHK의 하라 세이키 정치부장석 전화가 울렸다. 야마다 마키코 총리관저 내각 공보관이었다. 우리로 따지면 청와대 홍보수석쯤 된다. 야마다는 “총리, 지금 무척 화났어요. 그렇게 파고들다니 사전 협의와는 다르잖아요. 뭐라 말 좀 해 봐요”라며 따지듯 물었다.


전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취임 이후 처음 열린 국회에 나가 ‘소신표명 연설’을 했다. 집권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였다. 그리곤 곧바로 NHK 저녁 프로그램 ‘뉴스워치9’에 생방송 출연했다. 연설 내용을 재차 홍보할 기회로 여겼을 것이다. 이례적으로 국회 개원 첫날, 특정 언론사를 골라 생방송에 나서주는 ‘특혜’까지 줬으니 기대감은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진행자인 아리마 요시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현안인 ‘일본 학술회의 인사 논란’을 물고 늘어졌다. 스가 총리는 10월 초, 학술회의가 추천한 후보 105명 가운데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는 6명을 단체 회원으로 임명하지 않아 ‘학문의 자유 침해’ 논란을 자초했다.


질문이 반복되자 스가 총리 표정이 험악해졌다. “설명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며 씩씩댔다. 앵커를 노려보거나 탁자를 내리치려는 듯한 행동까지 보였다. 일본 주간지 ‘겐다이(現代) 비즈니스’는 “현장 스태프 모두가 숨을 죽이고, 마른 침을 삼켰다”고 당시를 묘사했다. 이 기사의 부제목은 ‘보도국을 좌불안석으로 만든 전화 한 통’이었다.


총무성 출신 야마다는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가 2013년 말, 홍보담당 총리 비서관으로 발탁한 인물이다. 1885년 내각제도 창설 이후 첫 여성 총리 비서관이었다. 그는 2년 동안 스가 관방장관 밑에서 언론 대책을 맡았다. 이후 총무성으로 복귀했다가 스가가 총리가 된 9월, 재지명돼 또다시 관저 내 유일한 여성 비서관이 됐다.


전화 한 통에 NHK가 위축된 건 당연했다. 야마다는 아베 정권 시절, NHK에 종종 압력을 넣어왔다. 앵커 하차나 기자 인사에까지 간여했다고 한다. 예컨대 NHK 앵커인 쿠니야 히로코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 들어가는 질문으로 유명했다. 그는 지난 23년간 NHK 간판 해설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현대’를 진행하다 2015년 12월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았다.


동료들은 그가 스가 관방장관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새 안보 법안으로 일본이 다른 나라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추궁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관저 측은 당시에도 NHK에 전화해 “관방장관이 화났다”고 맹렬히 항의했다 한다. 비슷한 시기 쿠니야 외에도 TV 아사히의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보도 스테이션’의 진행자와 TBS의 메인뉴스 앵커도 정부를 비판한 이유로 모두 방송에서 하차했다.


쿠니야는 하차 1년 뒤 낸 책 ‘캐스터의 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때 스가 관방장관 인터뷰가 생각났다. (중략) 저널리즘이 ‘물어야 할 것을 묻는’ 자세를 관철할 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탈 진실)의 세계를 뒤엎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박근혜 정권 때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정현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2014년 4월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9시 뉴스 앞에다가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내고 있잖아요.” “온 나라가 어려운데 이 시점에서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만 그게 맞습니까.” 이렇게 닦달했다.


6년 가까이 흐른 지난 1월에서야 이정현에 대한 벌금형이 확정됐다. 방송에 간섭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방송법을 어긴 사례로 처벌되는 첫 사례였다. 법이 만들어지고 무려 30년 만이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공개한 ‘2020 언론자유도’에서 한국은 42위, 일본은 66위였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선두였지만, 전 세계로 보면 여전히 ‘낯 뜨거운’ 수준이다. 2010년 11위이던 일본은 아베 총리의 9년 장기 집권을 거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한일 공영방송의 현실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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