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뒤치락하던 미국 대선 동안 오랜만에 CNN을 자주 들여다봤다. 뉴스 중간에 광고를 할 때마다 CNN의 자체 캐치프레이즈가 흘렀다. ‘사실이 먼저다(Facts First)’는 몇 년 전부터 보았던 구호지만, ‘그곳에 가라(Go There)’ 는 새로웠다. 뉴스가 벌어지는 ‘현장에 있겠다’는 다짐이었다.
현장을 지키는 데는 비용이 든다. ‘Go Ther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며 나는 지난 여름, 연구를 위해 만났던 한 국회 출입기자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출입기자는 현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출입처에서 현장은 오히려 실종되고 있었다.
-출입처에 대해 말들이 많아요.
“일단 기본적으로 언론사에 인력이 굉장히 없습니다. 2008년 이후로는 3명이 해야 할 일을 기자 1명이 하고 있어요. 부족한 인력을 운용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출입처예요.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도 책임이 분명해지거든요.”
-출입처 안에서도 ‘꾸미(くみ·租)’라는 기자들끼리의 알음알음 조직이 있다고요.
“꾸미도 왜 하냐, 사람이 없어서 하는 겁니다. 하루 일정 5,6개가 동시다발로 이루어져요. 회사에서는 이걸 말진이 혼자 챙기게 놔두죠. 절대 못 챙겨요. 그러니까 여러 언론사가 다 같이 이걸 공공재로 만들어서 공생하는 겁니다.”
-출입처에 의존해서 받아쓰기만 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현장에 인력을 배치하지 못하면 출입처가 생산하는 자료에, 그 관점을, 그대로 받아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나가는 기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현장에서 보고 느끼면, 단순히 받아치는 게 아닙니다. 그게 하루하루 보면 뉘앙스가 다 달라요, 그 느낌이.”
-출입처 보도의 한계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력을 굉장히 기생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돌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브리핑 워딩이 어디서 떨어지는 게 아닌데 자꾸 다 풀해주세요, 풀해주세요 이런 식인데, 돌려 생각해보면 이건 타사 시스템에 기생하는 거예요.”
과도한 노동의 결과는 기사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연구’를 발간한 박재영·허만섭·안수찬 연구팀은 조사에 응한 출입처 기자들이 하루 평균 3~4건의 기사를 작성하는데, 이는 하루 12시간을 쉼 없이 일한다 해도 3,4시간 만에 1건의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라 당연히 개별 기사의 품질이 높아지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난 4월 ‘포털뉴스 발행시간을 통해 본 언론사 뉴스 생산관행’이라는 논문을 펴낸 송해엽·양재훈·오세욱 연구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 명부와 포털 뉴스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언론종사자의 숫자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1.0%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발행 기사 건수는 498.6% 증가했다는 추산을 내놓았다.
나는 취재원 의존보다 현재의 출입처 제도가 가진 더 심각한 문제점은 출입처 제도가 기자를 갈아넣는 데 최적화된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계라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가 있고 작동을 멈췄을 텐데, 인간이라서 한계 이상을 감당해냈다. 그 결과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기사를 대량생산하는 값싼 노동력으로 기자 노동의 가치가 절하됐다는 것이다. 기자를 소모하는 이 시스템은 언론 스스로 언론의 기반을 허무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