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 만든 '때깔 좋은' 뉴스, 인정받을 날 오겠죠?"

[인터뷰] 최재영 SBS 탐사보도2부 기자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알파인 스키 경기장으로 쓰인 뒤 황무지 상태로 방치된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 해발 1100m가 넘는 산의 정상까지 카메라를 들고 오른다. 코로나19 여파에 높아만 가는 자영업 폐업률. 실태를 헤아리고자 명동 거리에 나가 빈 가게를 일일이 세고, 이태원 경리단길 2㎞를 걸으며 폐업한 가게 30여 곳의 주소를 지도에 기록한다. SBS 탐사보도2부 이슈팀이 보여주는 ‘발품 저널리즘(legwork journalism)’의 정수다.



이렇게 발품 팔아 만든 뉴스는 때깔도 남다르다. 인터뷰 씽크나 자막부터 예사롭지 않고, 다양한 소품과 CG를 활용한 영상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거기에 원고도 보지 않고 현장 중계를 해낼 정도로 발군의 진행 능력을 자랑하는 최재영<사진> 기자의 남다른 존재감까지. 그 탁월함은 가히 방송뉴스의 ‘TOP(티오피)’이라 할만하다. 비결을 묻자 최 기자는 ‘종합예술’, ‘미장센’ 같은 단어를 꺼냈다. 거창해 보이지만 이렇게 발버둥 치는 이유도 결국 하나, “살아남기 위해서”다. 다만 “방송뉴스가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 하는 것.” 그것이 고민의 시작이자 결론이었다.


국회를 출입하다 지난해 이슈취재팀으로 자리를 옮긴 최 기자는 선배인 권영인 기자와 함께 오래 고민해온 화두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방송뉴스가 살아남으려면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버그린 콘텐츠, 즉 두고두고 검색해 볼 수 있는 양질의 방송뉴스를 만들거나 현장을 보여주는 것. 에버그린 콘텐츠를 당장 하긴 힘드니 현장 라이브를 하자, 해서 시작한 게 발품 저널리즘입니다.” 말 그대로 발품을 많이도 팔았다. 각종 사고와 재난 현장은 물론, 궁금증이 생기는 곳이면 일단 찾아갔다. 심지어 플라스틱 쓰레기 실태를 보여주기 위해 제주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대답은 이랬다.


“시청자들에게 구걸한 거였어요. 우리가 진짜 들어가서 봤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3인칭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앉아서 기사 쓰지 않아요, 그걸 보여주기 위해 가서 다 확인하는 거죠.”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현장 르포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에버그린 콘텐츠에 집중했다. “신문이 할 수 없는, 유튜브와는 다른, 퀄리티 높은 방송뉴스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핵심은 유닛(UNIT) 시스템에 있다. 취재기자와 전담 카메라 기자, CG 담당, 작가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기획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전문적 영역을 가진 각자가 아이템을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하고 공유하며 협업하다 보니 결과물의 완성도도 높아졌다. 방송뉴스가 ‘종합예술’이란 말이 나온 이유가 여기 있다. 최 기자는 “때깔 좋은 뉴스는 결국 사람과 조직에서 비롯된다”며 “새로운 시도를 독려해주는 리더와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어준 중간관리자가 있었기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틀을 갖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때깔이 좋다고 뉴스 경쟁력이 올라가나?’ 최 기자 역시 “뉴스의 힘은 스트레이트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100명 중 90명의 기자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자신처럼 나머지 10명에 속한 기자들은 방송뉴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뭔가 다른 걸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BBC나 미국방송 뉴스를 보며 레퍼런스로 삼듯이, 그와 그의 팀이 만드는 뉴스 또한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향력 있는 유튜버들이 많잖아요. 그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은 훈련된 기자들이 소양 있는 고퀄리티 영상을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가 팩트파인딩한 결과물을 고품질의 영상물로 제작해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는 에버그린 콘텐츠로 만든다면, 유튜브 등의 자극적 영상물도 언젠가는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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