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갈등의 한 달이 지났다. 지난달 3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200여년 미국 역사에서 전례 없는 선거였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 우편투표에 참여했고, 덕분에 나흘이 지나서야 당선인이 확정됐다. 지난 100여년 이내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인 선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불복,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소송까지 제기한 것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전부터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선거결과에 불복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개표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4일 새벽 “우리가 크게 이겼지만 그들(민주당)이 선거를 훔치려고 한다” 는 트윗을 시작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글을 연달아 올렸다가 트위터로부터 줄줄이 경고를 받았다. 끝내는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한 주들의 개표결과 인증을 막으려는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잇따라 기각됐다.
지난달 23일에야 트럼프 대통령은 인수인계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정권 이양이 순탄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간접선거제인 미국은 유권자들의 투표결과에 따라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이 다시 투표를 해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된다. 각 주의 선거인단은 본인의 선호와 무관하게 그 주에서 승리한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돼 있어 선거인단 투표는 사실상 형식적 절차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 주지사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인단을 지정해달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반전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적어도 14일 열리는 선거인단 투표결과가 의회에서 인증되는 내년 1월 초까지는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의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선거 선동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미치 맥커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불복 소송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데 이어, 최근 워싱턴 포스트가 공화당 상·하원 의원 24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7명만이 바이든의 당선을 인정했다.
일각에서는 이 모든 선동과 분열의 이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를 위한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정치적 셈법을 떠나 현직 대통령이 합법적 절차에 따른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권위주의 독재정권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로, 선진 민주주의를 자부해온 미국역사의 치명적 오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뉴욕타임스는 1998년 멕시코, 2002년 짐바브웨, 2009년 이란 선거 등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손에 꼽힐 정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지지층이 두터운 트럼프의 눈치를 보며 바이든 당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공화당이 트럼프와 결별할지, 민주주의와 결별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브렌단 나이한 다트머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트럼프 정부 초기인 지난 2017년 초부터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없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What would you say if you saw it in another country?”)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의 개입 의혹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공공연한 언론 탄압, 인종차별, 여성 혐오, 선거부정 선동 등이 불거질 때마다 그가 이 질문을 던진 트윗은 수백여 개에 달한다. 초반에는 “이런 나라에 살지 않아 다행”과 같은 댓글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이건 완전 미국 이야기”, “미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같은 자조적인 댓글들이 눈에 띈다.
전에 없이 불안과 혼란으로 가득했던 2020년이 지나고 내년 초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면 미국 사회가 조금은 안정을 되찾을까. 내년에도 여전히 나이한 교수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