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고토(甘呑苦吐)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중국의 젊은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미·중 갈등으로 옮아갔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하는 동안 미국도 큰 이익을 봤는데 중국의 국력이 조금 세졌다고 짓밟으려 하는 건 온당치 않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대국은 대국답게 대접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피해자를 자처하는 와중에도 은연중 자신감이 묻어났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의 쓰임새가 줄어들고 오히려 위협이 되니 공세로 돌변했다는 의미로 읽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전후의 한·중 관계와 비슷하지 않냐고 물었다. 좌중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굳은 얼굴들을 보니 속마음과 조금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감탄고토(甘呑苦吐)’를 언급하며 미국의 행태가 꼭 이와 같다고 슬쩍 거들었다.


그들 역시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고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사자성어 같다며 중국에는 없는 표현이란다. 잠시 생각하더니 ‘염이부한이기(炎而附寒而棄)’를 유의어로 제시했는데, 따뜻하면 가까이하고 차가워지면 저버린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최근의 한·중 관계는 확실히 ‘염이부(炎而附)’ 국면이다. 한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 측도 우리 정부만큼이나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에 적극적인 건 사실이다. 지난달 한국을 찾았던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한국의 가려운 곳인 북핵 문제와 경제협력 강화, 한한령 해제 등에 대해 립서비스를 잔뜩 늘어놓고 갔다.


한국 기업을 향한 중국 지방정부들의 구애 수위도 높아졌다. 지난 10월 말 장쑤성 옌청에서 한·중 무역박람회가 개최됐는데 베이징에 출장을 갔던 장쑤성 성장이 개막식 참석을 위해 밤새 기차를 타고 귀환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나라 문을 걸어 잠근 중국이지만 한국과는 정기 항공편 확대와 전세기 운항, 신속통로(입국 절차 간소화) 제도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중국 내 한국 외교관과 기업인 대다수가 사드 사태 이후 분위기는 최고조라고 입을 모은다.


표면적으로라도 양국 관계가 따뜻해진 건 당연히 미국의 존재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가두기 위해 구축한 포위망에서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판단한 듯하다. 포위망을 이루는 핵심축 가운데 호주나 인도, 일본 등과는 단기간 내에 현 수준 이상으로 관계 개선을 이루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은 중국에 아쉬운 게 많은 나라다.


중국이 꿈꾸는 독자적인 가치사슬 구축에 있어서도 한국은 중요하다.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과 광활한 내수 시장을 앞세워 한국과 일본과 아세안까지 품는 동아시아 일체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저부가가치 생산기지 역할은 아세안에 넘기고 가치사슬 내에서 훨씬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게 목표다.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서명 완료로 이 같은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중국은 환호했다.


유의해야 할 점은 중국의 경제·외교 전략에서 한국이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RCEP 체결과 관련해 일본과 첫 FTA를 맺었다는 점을 집중 조명했다. 한·중·일 FTA도 중·일·한 FTA로 부른다. 인도와는 물리적 충돌까지 동반한 갈등을 겪으면서도 사드 사태 때처럼 적극적인 보복에 나서지 않는다. 한국보다 강하거나 전략적 가치가 높은 대상과의 저울질에서 우리는 또다시 헌신짝 취급을 받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당송 팔대가 중 한 명인 유종원이 지은 ‘송청전(宋淸傳)’의 약장수 송청은 부자는 물론 가난한 이에게도, 심지어 장사를 방해하는 관원에게도 한결같이 진심을 다했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다. 시일이 지난 외상 장부는 태워 없앨 정도였다. 많은 이들이 그의 성실함과 우직함을 비웃었지만 결국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더 크게 보답해 큰 부를 이룰 수 있었다. 유종원은 “요즘 사람들은 권세가 있는 귀인들만 좇고 보잘 것 없는 친구는 버린다”고 한탄했다. ‘염이부한이기’란 표현은 여기서 등장한다.


냉혹한 국제 관계에서 중국에 ‘송청의 덕(德)’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저 스스로 삼가고 또 삼가야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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