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MBC 시사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가 방영된 이후 포스코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다큐는 핵심 공정에 근무한 노동자들이 백혈병과 폐암 등 특정 질병으로 숨진 문제를 고발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열악한 작업 환경이 질병의 원인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일류 철강회사 포스코에 가려진 그림자를 비추는 일은 언론의 역할이지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포스코 없는 포항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까닭이다. 이번 다큐가 큰 반향을 일으킨 건 거대한 골리앗을 때렸기 때문이다.
반격이 거셌다. 한국노총 포스코노조가 선봉에 섰다. 노동자들의 자긍심을 꺾었다며 포스코의 지역 투자 등 상생 발전 활동을 중단할 것을 선언하는 입장문을 냈다.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근로환경 고발은 노조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일인데, 마치 회사 대변인인양 나서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다큐 내용이 사실을 왜곡했다면 구체적인 증거로 반박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하면 될 일이지, 지역사회 경제를 볼모로 겁박하는 행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성적인 대응을 촉구한다.
수출이 최고의 목표로 용광로처럼 펄펄 끓던 시대를 이끈 공로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산업 역군으로 포스코를 떠받친 노동자들의 땀과 열정, 헌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포스코를 일군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듬는 일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포스코는 기업시민헌장에 이렇게 적고 있다. “지역사회 발전과 환경보호를 위한 공익적 활동을 전개한다. 구성원의 건강과 안녕을 도모한다.” 포스코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고 살아온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병을 얻었는데, 외면하는 태도는 포스코가 쌓아온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작업환경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조사하는 일에 회사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이 있으면 보상하고,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으면 혐의를 벗을 기회로 삼으면 된다.
다큐에는 포스코 노동자뿐 아니라 공장 주변 주민들의 건강도 위협받고 있는 내용이 있다. 천식과 피부질환의 원인이 공기 중 날아온 미세먼지에 섞인 중금속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매캐한 냄새와 집 마당에 쌓인 쇳가루, 창문을 열 수 없는 환경을 기록했다.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화학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여수 산업단지 인근 마을은 환경오염을 이유로 집단 이주한 전례가 있다. 포항시가 적극 나서 주민 건강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지금처럼 남의 집 불구경하듯 팔짱 끼고 관망할 때가 아니다. 혹시 방송이 지적하듯 ‘침묵의 카르텔’이 포스코를 둘러싼 여론을 덮고 있다면 더 심각하다. 포스코 비판보다 홍보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조사 결과는 이런 혐의를 뒷받침한다. 언론의 주요 광고주로, 시 세수의 큰 부분인 기업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 됐다면 위험하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부패하듯, 기업도 마찬가지다.
포항MBC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며 말했다. “수십 년간 묻혀 온 철강 노동자들의 직업병 실체를 드러내고 누구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방송이었다…포스코는 성역이 아니며, 환경·노동·안전과 관련해 법적 의무를 다하고 언론의 감시를 받아야 할 포항의 한 구성원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보면, 누구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위험한 환경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 강조돼야 할 까닭이다. 포스코 경영 이념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이다. 그 뜻을 실현하는 길이 무엇인지 성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