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체 공개 태형' 기사가 말하지 않는 것

[글로벌 리포트 | 인도네시아]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예컨대 이런 전개다. ‘OO혐의로 OO대 공개 태형→이슬람 관습법(샤리아) 지배→국제 인권단체 비난’ 제목은 ‘이유는’인데 정작 내용은 헐겁다. 외신을 옮기거나 현지 매체를 번역한 통신 기사를 베껴 쓴 수준이라 그렇다. OO은 달라지지만 독자들 반응은 대개 빼쏘았다. ‘미개한 무슬림’. 인도네시아 서북단의 아체특별자치주(州)의 공개 태형 기사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스테레오타입이다. 필자 역시 특파원 부임 후 두어 개 썼다. 왜? 읽히니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습과 전통을 차 떼고 포 떼고 우리 잣대에 맞춰 쓰면 그만일까, ‘세상에 이런 일이’류의 특이한 소재에 기대 페이지뷰(PV)만 끌어올리면 되나. 명색이 해당 지역을 챙기는 특파원인데 안일하다는 반성에 이르렀다. 상주하고 있는 자카르타 내 취재원들을 아쉬운 대로 활용했으나 아체는 그들도 잘 모르는 곳이었다. 그래서 직접 갔다. 인도네시아인들조차 “위험하다”고 말리는 그 곳을, 아체 주(州)정부와 현지 대학의 방문허가서까지 품고.


취재는 100% 만족스럽지 못했다. 태형 집행이 연기되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현장을 놓쳤다. 대신 샤리아 경찰의 담당 간부와 주민들을 만났고 일선 단속 현장을 챙겼다. 아체에서만 산 기성세대는 아무래도 인식이 편향될 것 같아 해외 유학파 젊은이들도 인터뷰했다. 이들의 한결 같은 요구는 “제발 보고 들은 대로만 써달라”는 거였다. 오죽 억울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부디 아체 공개 태형 기사를 쓰거나 읽을 때 참고가 되길 바란다.


우선 공개 태형은 죄를 지으면 무조건 때리는 일방적인 형벌이 아니다. 징역형, 벌금형, 태형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태형이 싫으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작년에 해당 범죄를 저지른 75명은 모두, 심지어 중국계 불교 신자도 국제 인권단체가 주장하는 “비인간적이고 악랄한” 형벌, 즉 공개 태형을 스스로 택했다. 샤리아 경찰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공개 태형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심리적 수치심을 주는 데 있다. 태형 횟수가 많아져 고통을 호소하면 집행을 중단하고 상태를 따져 다시 날을 잡는다. 둘째, 태형은 시간과 금전을 아낀다는 점에서 죄인 입장에선 ‘관대한’ 형벌이다. 부모가 수감되면 그 자녀들은 방치될 수밖에 없고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간적인’ 형벌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태형이 비인간적이고 악랄하다고 여긴다면 다른 벌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태형이 적용되는 범죄와 매질 횟수는 주정부의 이슬람형법(Qanun Jinayah)이 규정하고 있다. 혼외 성관계 등 부적절한 남녀 관계, 음주, 도박, 동성애, 무고(위증), 성희롱, 강간 등 10가지다. 매질 횟수는 범죄 유형에 따라 최대 12대부터 최대 170대까지로 정해진다. 가장 높은 형량을 받는 범죄는 미성년 강간(170대)이다. 절도 등 다른 범죄는 일반 형법이 적용된다.


단속 현장은 평범했다. 과격하거나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외국인은 처음 걸리면 체벌 대신 아체 문화를 습득하는 강의를 들어야 한다. 외국인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지만 한번의 기회를 주는 셈이다. 공개 태형을 비난하는 주민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소위 엘리트들마저 “우리가 유학 시절 그 나라 법을 따랐듯, 아체에선 아체 법을 따르면 된다”고 옹호했다. “샤리아대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20대 여성도 있었다. 오히려 주민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외부, 특히 서양의 인식과 시선이 “편협하고 과장됐다”고 강조했다. 이후 단순 태형 기사는 쓰지 않는다.


성소수자 인권 및 사생활 침해 등 논란의 여지는 분명히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따로 논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런 논의에 앞서 우리는 아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정확히 알아야 판단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지론처럼 “최선이나 최고의 문화는 있을 수 없다. 세계의 모든 문화들은 서로 존중받고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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